박해 속에 피어난 복음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가 사도행전 8장 1–5절을 중심으로 한 설교·강의를 토대로 본문이 말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역사와 복음 전파,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 교회가 어떻게 이어받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실천적 고찰을 담았다. 또한 장재형목사가 강조해온 ‘참된 복음’과 ‘역사를 꿰뚫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을 중심으로, 환란 속에서도 진전하는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새 시대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초대교회의 핍박, 흩어짐, 그리고 복음의 확장

사도행전 8장 1–5절은 초대교회가 겪은 극심한 박해와 그로 인해 교회가 흩어지는 장면을 증언한다. 특히 사도행전 7장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의 죽음 이후, 교회 공동체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시작되었다. 스데반이 죽자마자 많은 성도들이 심한 두려움을 느꼈고, 예루살렘 교회를 대상으로 한 핍박이 가혹하게 일어났다. 이로 인해 “사도들 외에는 다 흩어졌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교회 공동체는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울(훗날 바울)이 교회를 잔멸하고자 각 집을 수색하며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까지 벌어졌다(행 8:3). 당시 핍박을 받은 성도들은 마치 큰 홍수에 휩쓸린 자처럼,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은 이러한 ‘흩어짐’이 결코 복음의 후퇴나 실패를 의미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도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도피하듯 몸을 숨겼어도, 그곳에서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행 8:4). 인간적으로 보면 ‘슬프고 겁먹은 영혼’들의 이동이었으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면 이 사건은 복음의 지경을 확장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을 벗어나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는 복음 전파가 본격화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더욱 넓은 지역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이 대목은 예수님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을 다시금 상기시키기도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마 28:19–20),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땅끝까지 가야 한다는 분명한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은 한곳에 머무르는 상태로 안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로 말미암아 억지로라도 흩어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음 전파의 지평이 예루살렘 너머로 확대되었다.

이 장면을 두고 교회사학자들은 ‘사탄의 역설적 실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악한 세력이 교회를 탄압함으로써 복음을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 탄압이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려움과 비극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오히려 구원의 역사를 진전시키는 열쇠로 작용한 것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시절뿐 아니라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빈번히 나타난 패턴이다. 교회가 고난당할수록 복음은 오히려 더 멀리 퍼져나갔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성도들은 그 흩어진 장소에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패턴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해의 정도와 형태는 달라졌으나, 교회가 세상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핍박은 여전히 존재한다. 동시에 교회 내부에도 왜곡된 사상이나 복음을 흐리는 이단적 흐름, 또는 편협한 교권주의와 물질적·인간적 욕심 등이 섞여 들어올 때가 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가현설(도케티즘, Docetism)이라든지 영지주의(Gnosticism) 같은 잘못된 사상들이 성도들을 현혹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우리가 구원에 이르려면 스스로 안에 있는 어떤 신적 파티클(particle)을 개발해 온전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복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내부적 도전과 외부적 박해 속에서도, 초대교회는 결국 ‘바른 복음’을 지켜냈고, 오히려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을 발견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주목하면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환란을 겪을 수는 있어도, 진정한 복음 전파의 사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영광 중에도 사역할 수 있지만, 고난 중에도 여전히 놀라운 방법으로 복음을 펼쳐가신다. 성령은 억지로 흩어지게 된 상황에서조차 각 사람의 마음에 함께하시고, 그 교회 공동체가 흩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와 만나게 하신다. 이런 이유로 “핍박과 환란이 결코 복음 전파의 동력을 잃게 하지는 않는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선교 현장에서의 도전과 역경을 ‘새로운 기회’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교회론을 제시한다.

실제로 사도행전 8장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는 구절은 ‘흩어짐’이 ‘사라짐’이 아니라 ‘확장’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의 눈에는 패배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광범위한 이동과 재배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증거되도록 하셨다. 당시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던 땅이었고, 사회·종교적으로 유대와 갈등을 빚어온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을 때,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주로 고백했다(행 8:5 이하). 이 사건은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서는 복음의 능력을 증거한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세상이 갑자기 바뀌고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이 몰려올 때—이를테면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환란의 시기—예배 형태나 교회의 활동이 크게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핍박’이든 ‘환란’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겪게 되는 이 어려움을 하나님의 광대하신 목적 속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복음 전파와 교회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환란을 만나 산산이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성령이 머무는 교회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라는 확신을 자주 강조한다. 성령은 모아주시기도 하지만 흩어지게도 하시며,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를 아우르신다. 현대 교회가 예배당 건물이나 제도적 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복음을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 전하며,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접촉점을 활용해서 ‘보이지 않는 교회’를 넓혀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대교회 당시 성령이 흩어진 자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새로 세워지는 교회를 탄생시켰던 원리와 맞닿아 있다.

사도행전 8장에서 확인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교회가 ‘환란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있다는 점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박해가 임하지 않았더라면 편안함에 안주하며 예루살렘 교회에만 모여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박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성도들을 세상 구석구석으로 보내신다. 이 점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기쁜 노래를 부르며 자발적으로 흩어져 나간다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라고 자주 역설한다. 즉, 억지로 몰려서가 아니라, 복음의 시급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혀 자발적으로 떠나는 ‘순종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28–3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아들의 비유처럼, 말만 하고 가지 않는 아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되어야 교회는 한순간의 환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환란 때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하듯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이미 ‘언제 어디로든 보냄받아 갈 준비가 된’ 상태여야 한다는 메시지다. 바울 역시 훗날 로마 황제의 박해 아래서도 끊임없이 편지를 써 교회들을 돌보았고, 감옥에서조차 복음을 전하였다(빌 1:12–14). 초대교회의 이 같은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복음 전파의 원형질이다.

또한, 교회가 문화적·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져야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사마리아에 내려간 빌립의 사역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전통 유대교 관습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복음을 심어 넣은 사례다. 이와 유사하게 바울은 갈라디아, 에베소, 고린도 등 서로 다른 도시·문화권에 교회를 세울 때, 거기에 맞는 접근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 등에서도 교회의 다양성 속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으며, 각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기능하되, 그 모양과 구조가 획일적이지 않음이 나타난다.

장재형목사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명언,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옷이다(As religion is the substance of culture, culture is the form of religion)”를 자주 인용하며, “복음이라는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문화의 옷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SNS, 스트리밍, 온라인 커뮤니티, 화상회의 등 다양한 매체가 ‘복음을 담는 옷’이 될 수 있다. 결코 복음 자체를 변개해선 안 되지만, 전파의 형태와 교회 공동체 조직 방식은 얼마든지 달리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8장 이후 점차 유대·사마리아를 넘어 소아시아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복음을 전한 것처럼, 현대 교회도 새로운 미디어와 방식, 여러 문화 영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현대 교회에 당면한 또 다른 도전은 ‘개인의 구원’과 ‘역사의 구원’을 함께 균형 잡아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큰 주제는 창조, 타락(죄), 구원,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사망이 없고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없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과정’을 최종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개인이 구원받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역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함께 꿈꾸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역사의식이 현대 교회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 제자들이 예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을 때(행 1:6), 예수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정하셨다”라고 답하셨으나, 동시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라고 당부하셨다. 이 땅의 역사 속에 복음이 자라나고,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 안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다음 세대를 일으켜 세우고,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거나 교세 확장만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사도행전 8장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초대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불어닥친 대규모의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이 흩어짐이 오히려 복음 전파의 문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반대와 핍박을 통해서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며, 성령의 권능은 흩어진 성도들의 입과 발, 그리고 삶을 통해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뿌리내리도록 하셨다. 교회는 억지로 밀려나서가 아니라, 자발적 순종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기꺼이 ‘땅끝’을 향해 가야 한다. 이것이 사도행전 8장 1–5절이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모습이며, 또한 장재형목사가 늘 강조해온 복음 전파의 정신이기도 하다.

2. 현대 교회의 도전, 새로운 복음 전파 방식

사도행전 8장을 통해 확인한 초대교회의 역동성과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시대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세워진 1세기 지중해 세계와 비교할 때, 현재 인류는 기술, 문화,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교회가 전통적인 예배 형태와 모임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빠르게 온라인 예배나 비대면 모임을 시도해야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동시에, ‘대면 예배’에 대한 지나친 고집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회가 과연 이런 급변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이어갈 것인지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장재형목사는 오랜 기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교와 목회 활동을 해오면서, “교회가 건물을 벗어나 사람들의 실제 생활 영역 속으로, 그리고 미디어의 장(場)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름다운 발’을 가지고 먼 나라를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면(롬 10:15), 현대에는 ‘미디어’가 발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SNS, 모바일 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교회는 직접 사람이 오지 않아도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얻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이며, 그 메시지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불변의 진리여야 한다.

실제 장재형목사는 “Moving Forward”라는 슬로건처럼, 교회가 후퇴하거나 정체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핍박이 닥치면 핍박 속에서, 환란이 오면 환란 속에서, 평안한 시기가 오면 평안함 속에서—어떤 상황에서도 교회는 절대 복음 전파의 엔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초대교회처럼 ‘흩어지는 교회’가 되면 약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흩어짐이 ‘네트워크화’된 재배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 시대의 교회는 SNS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예루살렘 교회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교회의 형태’는 단지 모임을 온라인으로 바꾸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회 운영, 제자훈련, 전도·선교 등의 모든 측면에서 디지털 환경을 교회 본연의 사명과 창의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초대교회가 회당과 성전, 그리고 가정 교회라는 다양한 형태를 오가며 사람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현대 교회도 예배당, 온라인, 가정,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복음을 심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헌금, 재정 운용, 인력 양성, 성찬과 세례 같은 성례전의 진행 등, 전통적 교회가 익숙하게 유지해 온 요소들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는 상당히 신학적이고도 실천적인 과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강조한다. 교회의 본질, 곧 “그리스도의 몸이자 성령의 전이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공동체”라는 사실만 분명히 붙들고 있다면, 옷과 같은 외형적 문화 형식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성령의 내주, 하나님의 나라 완성에 대한 소망 등 기독교 진리의 핵심 교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2. 형식은 변할 수 있다.
    예배당 중심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로 확장되거나, 주일 한 번 모이는 형태에서 주중 소그룹 혹은 지역 공동체 활동으로 늘어나거나, 교회 재정 운영 방식이 바뀔 수 있다. 이것은 본질과 충돌하지 않는 한 모두 ‘문화의 옷’에 해당한다.
  3.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핍박이 오든 환란이 오든, 혹은 교회가 비교적 평온하고 사회적 신뢰를 받고 있든,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성령은 때로는 흩어지게도 하시고, 때로는 한데 모이게도 하시며,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인도받아 복음을 전했고(행 8:5), 또한 이디오피아 내시의 수레 옆으로 가서 말씀을 가르친 것처럼(행 8:26–39), 현대 교회도 성령의 인도 아래 움직여야 한다.
  4. 새 시대에 맞는 교육과 제자 양성이 필수적이다.
    초대교회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지만, 회당에서 말씀을 교육했고, 가정 교회나 작은 모임에서도 끊임없이 가르쳤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자녀를 교육하는 전통이 강했기에, 회당 교육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현대 교회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교육 플랫폼, 청소년·청년 사역 모델, 온라인 성경 공부, 미디어 활용 등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교회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수할 수 없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원칙하에, “디자이너와 IT worker를 귀하게 여기라”고 강조한다. 복음 전파의 ‘아름다운 발’이 이제는 IT 인프라와 디지털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새로운 발’을 잘 활용하려면, 이를 이끌 인재가 필요하고, 그러한 인재가 실력을 발휘하여 디지털 사역을 활성화해야 한다. 크리스천 디자이너, 영상 편집자, IT 전문가, 온라인 마케터 등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봉사와 사역으로 연결한다면, 전 세계 어디든 즉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교회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대교회는 교인들이 공동체적으로 재산을 나누고(행 2:44–45), 사도들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며(행 2:42), 서로 돌보고 교제했다. 오늘날 교회도 이러한 ‘연결’과 ‘돌봄’ 기능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자들이 말씀을 배우고, 서로 소식을 나누며,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개인 상담과 기도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교회가 플랫폼화되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나 거리의 장벽을 뛰어넘어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시에 성도 간의 교제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주신 구원 역사의 흐름 안에 있다”는 ‘역사 신학적’ 시각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언급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과도 맞닿아 있다. 단지 지역 교회만을 성장시키는 것을 넘어서,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가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교회가 끊임없이 준비하고 파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교회가 여러 나라에 맞는 ‘현지화된 형태’로 세워져야 한다. 음식 문화, 의복, 언어, 인프라 환경 등은 제각각 다르기에, 어느 지역 교회든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선 현장의 상황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소아시아, 로마 등 각기 다른 문화권에 맞춰 교회 모델을 달리했음을 상기시키며,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함께 활용해 복음을 폭넓게 전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인터넷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권’을 한꺼번에 연결할 수 있는 획기적 통로다. 이를 통해 선교가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 마을에 직접 선교사가 들어가기 이전에, 온라인 콘텐츠나 통역 영상을 통해 먼저 복음을 소개할 수도 있다. 또는 현지의 소규모 공동체가 온라인으로 훈련을 받고,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려면 교회가 ‘디지털 선교 센터’나 ‘온라인 미션 스쿨’ 같은 조직을 마련하고, 교역자나 선교사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을 예비하는 교회”라고 칭하며, “곧 새벽이 오리라”라는 확신 속에 교회가 선제적으로 움직이길 촉구한다.

그는 또한 “마지막 때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에 적극 동참해야 할 필요성을 부단히 제기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이뤄져 온 복음 확장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며, 다양한 장애와 영적 전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를 통해 계속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 복음이 먼저 전파되어야 한다”(막 13:10)는 말씀대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초대교회가 가졌던 영적 DNA—곧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복음 확장의 발판으로 삼았던 불굴의 믿음, 문화와 지역 경계를 뛰어넘어 기꺼이 흩어져 간 선교 정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순종—이 현대 교회에도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디어와 IT 기술, 온라인 네트워크, 그리고 시대적 문화 트렌드를 적극 활용하여 전 세계로 나아가는 교회를 형성하길 촉구한다.

핵심은 ‘바른 복음’과 ‘참된 교회론’을 견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최신 기술과 플랫폼을 사용한다 해도, 복음 자체가 흐려지거나 진리가 왜곡되면 교회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반대로, 복음의 핵심이 견고히 서 있고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가운데, 시대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하며 다양한 사역을 시도한다면, 초대교회의 “흩어지는 중에도 전진하는 교회”가 오늘날에도 힘차게 재현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추수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고 자주 언급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영적 갈급함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시대이기에, 교회가 정확하고도 따뜻한 복음을 제시한다면 많은 영혼이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사도행전 8장 8절 이하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을 고치고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나와 있다. 이처럼 기쁨이 없는 세상 가운데 기쁨이 전해지고, 절망하는 곳에 소망이 전해지는 것이 복음 사역의 핵심이자 결실이다.

한편, 교회가 이렇게 ‘흩어지는 교회’이자 ‘네트워크 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는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도전이 뒤따른다. 기존 제도권 교회 내부에서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고, 물리적 예배당과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전통 교인들과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성찬이나 세례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문제, 직분의 위임과 목회적 치리가 어떻게 이뤄질지 등에 대한 신학적 논의도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재형목사는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모든 논의를 거치면서도 결국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 더 나아가 안디옥 교회가 함께 겪었던 시행착오의 현대판”이라고 부른다. 유대인 중심의 초대교회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맞닥뜨린 문화적, 신학적, 실천적 갈등(행 10장, 갈 2장 등)을 생각해 보면, 교회 역사는 언제나 자기 갱신과 확장을 통해 성장해 왔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완성된 형태’로 머무는 법이 없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하고 복음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 8장 1–5절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흩어짐과 복음 확장’은, 현대 교회가 갈 길을 조명하는 강력한 등불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늘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주도하신다. 교회가 성령께 순종해 모일 때는 모이고, 흩어질 때는 흩어져야 한다. 이 원리를 현대에 적용할 때, ‘보이지 않는(invisible) 교회’와 ‘보이는(visible) 교회’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대적 교회론이 가능해진다. 또, 개인 구원만이 아닌 역사의 구원을 꿈꾸는 거시적 안목 속에서, 이 세상의 흐름을 성경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 모든 열방으로 나아가는 ‘미디어 시대의 선교’가 활짝 열릴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방향은 결국 “상황에 매이지 않되, 상황을 역이용해 복음 확장을 이루라”는 메시지에 요약된다. 이는 초대교회가 박해를 ‘전진의 계기’로 삼은 것처럼, 현대 교회도 역병이나 사회적 제약, 문화적 편견과 불신 속에서도 여전히 ‘Moving Forward’ 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령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든 민족과 열방에 나타내신다. 교회는 그 부름에 응답하여—흩어지든 모이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끊임없이 복음을 말하고 나누어야 한다.

사도행전 8장에서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큰 울음 뒤에도 빌립이 사마리아로 내려가 복음을 선포하며 기쁨을 전했던 것처럼, 현대 교회도 오히려 어려운 시대 한복판에서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를 증거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핍박과 환란이 클수록, 성령의 임재와 권능은 더욱 강하게 역사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렇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면서도 담대해질 수 있고, 어떤 모양으로든 교회를 이어가며 복음을 확장해 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장재형목사를 비롯한 모든 복음의 일꾼에게 “가라, 그리고 전하라”라고 명령하신다. 핍박이나 환란이 아니라, 사랑과 순종과 기쁨의 동력으로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사도행전적 부흥과 역동성을 다시금 회복하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핵심은 “초대교회 역사를 통해 본 복음의 확장과 현대 교회가 마주한 변화, 그리고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바른 복음과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이다. 초대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흩어짐이 복음 확장의 계기가 되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어디에서나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 현대 교회는 다른 차원의 도전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같은 성령과 동일한 복음을 붙들고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부각하면서, “교회가 이제 시대에 맞춰 유연하고도 강력하게 확장해 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사도행전 8장을 자세히 살피며 깨닫게 되는 진리이며, 믿음 공동체로서 실천해야 할 분명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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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es 9 : la conversion et la vocation de Paul | Pasteur David Jang

Celui qui partait arrêter des chrétiens est devenu un témoin annonçant Jésus-Christ. La conversion de Paul, relatée dans Actes 9, montre comment la grâce du Seigneur a transformé les certitudes d’un homme et le but de sa vie.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fondateur d’Olivet University aux États-Unis, examine comment cette transformation se prolonge dans l’annonce de l’Évangile, l’accompagnement au sein de la communauté et la mission de prendre soin des autres. Après avoir confessé notre foi, quelle direction donnons-nous à nos paroles et à nos choix ?

La repentance commence lorsque l’on accepte de remettre en question ses certitudes

Saul ne manquait ni de connaissances ni de zèle. Pourtant, ce qu’il entendait poursuivre de Jérusalem jusqu’à Damas, c’était l’arrestation de ceux qui suivaient Jésus. Le seul fait d’être fidèle à ses convictions ne suffit pas à donner à sa vie une juste direction. Le Seigneur est intervenu sur ce chemin et l’a amené à soumettre son jugement à Jésus-Christ, qu’il rejetait jusque-là.

La prédication voit dans la scène où des sortes d’écailles tombent des yeux de Saul l’image d’une transformation spirituelle : l’incrédulité et les habitudes de pensée se dissipent. Même les jugements auparavant tenus pour évidents sont alors réexaminés à la lumière de la Parole. La conversion consiste à reconnaître Jésus-Christ comme Seigneur et à confier la direction de sa vie à sa Parole. Se repentir, c’est reconnaître honnêtement ses fautes et modifier ses choix en accord avec cet aveu.

À l’origine de cette conversion se trouve la grâce du Seigneur, qui est venu le premier à la rencontre de Saul. L’appel reçu alors qu’il combattait l’Église lui a permis de reconnaître l’erreur de son jugement. Si l’on réduit la repentance à la lourde obligation de devenir meilleur par ses propres forces, on risque de perdre de vue celui qui a ramené Saul à lui. Une vie à l’écoute de la Parole et dans l’obéissance prend un nouveau départ lorsque celui qui voulait porter seul tout le poids de sa transformation apprend à s’appuyer sur le Seigneur.

Cette interrogation se prolonge dans notre méditation biblique d’aujourd’hui. Si nous ne cherchons que des versets qui confirment des conclusions déjà tenues pour justes, nous pouvons lire la Parole tout en laissant nos propres jugements intacts. Il nous faut aussi nous examiner lorsque nous tranchons au nom de la foi sans avoir écouté l’autre jusqu’au bout. Celui qui se laisse éclairer par la Parole ne considère pas seulement la force de ses convictions ; il cherche aussi à discerner qui elles l’amènent à suivre.

Reconnaître ses fautes ne signifie pourtant pas devoir rester prisonnier de son passé. La grâce qui a appelé Saul nous invite à ne pas exclure trop vite la possibilité qu’une personne change. Si la prédication rapproche le dessein de Dieu et la vocation, c’est parce qu’elle situe dans le Seigneur l’origine de l’appel. Là où nous étions tentés de nous glorifier de nos connaissances et de notre expérience, ou de ne voir que nos insuffisances, nous nous demandons désormais qui nous pouvons servir avec ce que nous avons.

Annoncer sans attendre l’Évangile que l’on a reçu

Chez Saul, cette nouvelle orientation s’est aussitôt exprimée par le témoignage. Après sa conversion, il s’est mis à proclamer dans les synagogues que Jésus est le Fils de Dieu et le Christ. Le nom qu’il rejetait autrefois est devenu la bonne nouvelle du salut à annoncer aux autres. Le sens de sa conversion apparaît clairement lorsque l’on considère à la fois ce qu’il a abandonné, celui en qui il croit désormais et le but pour lequel il vit.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ici l’importance de ne pas remettre à plus tard l’annonce de l’Évangile. Ce qui portait le témoignage de Saul, c’était sa conviction concernant l’identité de Jésus-Christ. Lorsque le Seigneur, qui a expié nos péchés et qui est ressuscité, demeure au cœur de l’Évangile, évangéliser revient à transmettre à d’autres la grâce que l’on a reçue. Même lorsque nous parlons des joies de la vie d’Église ou des bienfaits que nous avons personnellement reçus, il nous faut garder Jésus au centre afin que ceux qui nous écoutent puissent le connaître.

Il faut pour cela la sagesse de poursuivre ensemble l’apprentissage et la mise en pratique. Tout en encourageant un témoignage immédiat, cette prédication souligne l’importance de l’étude de la Parole, de la prière, de la méditation et de la formation des disciples. Même sans pouvoir encore répondre à toutes les questions, nous pouvons annoncer honnêtement l’Évangile que nous comprenons et croyons aujourd’hui. La disposition à continuer d’apprendre, sans prétendre connaître ce que l’on ignore, grandit de pair avec l’obéissance qui saisit sans attendre les occasions de partager la grâce reçue.

Lorsque nous revenons sur une conversation où nous avons parlé de notre foi, notre aisance à nous exprimer n’est donc pas le seul point à examiner. Avons-nous suffisamment écouté les questions de l’autre ? En lui parlant de Jésus, n’avons-nous pas surtout cherché à prouver que nous avions raison ? Si une occasion de parler de la foi se présente dans notre famille ou au travail, nous pouvons prendre le temps d’examiner ensemble ce qui reste difficile à comprendre. Quand une connaissance claire de la Parole rencontre l’amour du prochain, le témoignage devient une invitation qui respecte l’autre.

La corbeille et Barnabas : un soutien pour poursuivre la mission

Alors qu’il annonçait ainsi l’Évangile, Saul a été menacé de mort. Descendu dans une corbeille le long de la muraille de Damas, il a pu s’enfuir. À Jérusalem aussi, l’opposition l’a contraint à partir ailleurs. L’appel du Seigneur n’avait pas fait disparaître les dangers de son chemin. Tout en témoignant avec assurance, Saul a accepté l’aide d’une communauté qui veillait sur lui. Cette scène nous rappelle que reconnaître sa fragilité et accepter de l’aide font aussi partie du chemin de foi de celui qui accomplit sa mission.

Les disciples de Jérusalem rencontraient une autre difficulté : ils craignaient Saul, qui les avait persécutés. Barnabas l’a alors présenté aux apôtres et l’a aidé à trouver sa place dans la communauté. Cette scène montre que, pour que la transformation d’une personne soit accueillie et puisse s’affermir dans l’Église, il faut aussi des personnes qui créent des liens et contribuent à faire naître la confiance.

L’Église d’aujourd’hui peut se souvenir de cet accompagnement lorsqu’elle accueille de nouveaux croyants. Les encourager à annoncer l’Évangile doit s’accompagner de relations dans lesquelles leurs questions et leurs difficultés peuvent être entendues. À ne s’intéresser qu’aux résultats du ministère, on risque d’ignorer la situation de ceux qui sont épuisés. À ne garder en mémoire que leur passé, on peut manquer les efforts qu’ils font pour vivre autrement. Offrir une issue face au danger et demeurer à leurs côtés pendant que leur foi grandit font partie de la responsabilité confiée à la communauté.

En rapprochant les souffrances de Paul et la paix de l’Église, la prédication attire l’attention sur la manière dont le dévouement de certains soutient la foi d’autres personnes. Les Actes rapportent que l’Église, dans toute la Judée, la Galilée et la Samarie, grandissait dans la crainte du Seigneur et la consolation du Saint-Esprit. Se souvenir de celui qui soutient cette croissance évite de faire reposer l’avenir de l’Église sur l’enthousiasme d’une seule personne. Le fait que le récit passe de l’histoire de Saul au ministère de Pierre montre également que Dieu agit à travers plusieurs personnes.

L’amour que révèlent le ministère de guérison de Pierre et les vêtements de Tabitha

À Lydde, Pierre a rencontré Énée, un homme qui ne pouvait plus se lever depuis huit ans. En proclamant que Jésus-Christ le guérissait, Pierre a clairement désigné celui qui était à l’origine de la guérison. C’est vers le Seigneur, qui restaure la vie, que l’attention doit se porter. Lorsque celui qui exerce un ministère met son propre nom en avant, il risque de détourner les regards de Jésus. L’humilité demeure donc nécessaire, même lorsqu’un miracle s’accomplit.

Le récit se poursuit à Joppé, où Tabitha, qui était morte, est ramenée à la vie à la suite de la prière de Pierre. Beaucoup, en apprenant cet événement, se sont mis à croire au Seigneur. Le miracle a tourné les regards vers le Seigneur de la vie. En suivant Actes 9, on voit ainsi que les récits de conversion, de témoignage et de guérison attirent tous notre attention sur Jésus-Christ.

La manière dont Tabitha avait vécu révèle elle aussi le contenu concret de cette foi. Elle était une disciple qui aidait les veuves et les pauvres, notamment en leur confectionnant des vêtements. Les vêtements qu’elle avait faits nous invitent à réfléchir à la manière dont l’amour répond aux besoins réels d’une personne. Nous pouvons, nous aussi, partager notre temps et nos compétences, ou mettre les personnes en relation avec ceux qui peuvent leur apporter l’aide nécessaire. Les efforts qui aident quelqu’un à vivre au quotidien ont une valeur que les seuls résultats visibles ne permettent pas de mesurer pleinement.

Le pasteur David Jang encourage à prier pour la guérison tout en reconnaissant la valeur du travail des professionnels de santé et des traitements appropriés. Prier pour le rétablissement d’une personne malade engage aussi notre responsabilité envers les difficultés et les besoins qu’elle rencontre aujourd’hui. Même lorsque les résultats de la guérison ne sont pas visibles, il nous faut persévérer dans la foi et continuer à prendre soin de la personne. La foi qui rend gloire au Seigneur se manifeste par le respect et la sollicitude témoignés jusqu’au bout aux personnes qui ont besoin d’aide.

Cet amour s’étend aussi au-delà des frontières familières à l’Église. La prédication voit dans le séjour de Pierre chez Simon le tanneur une préfiguration de la mission auprès des non-Juifs. Cette scène nous invite à nous demander si nous ne délimitons pas d’avance les destinataires de l’Évangile en fonction de nos relations et des différences culturelles. L’Église est appelée à dépasser son confort pour chercher comment rejoindre ceux qui ne connaissent pas encore le Seigneur. Si la prédication évoque l’annonce de l’Évangile dans des cultures diverses et par les médias, c’est aussi en lien avec cette mission : se rapprocher des lieux où les personnes vivent.

La grâce qui a changé la direction des pas de Saul sur le chemin de Damas éclaire aussi nos choix d’aujourd’hui. Si nous avons laissé passer une occasion de parler de l’Évangile ou poursuivi notre chemin malgré le besoin d’une personne, c’est là que nous pouvons commencer par un petit acte d’obéissance. Aujourd’hui, à qui l’appel que j’ai reçu me conduit-il à annoncer l’Évangile, et auprès de qui m’invite-t-il à être présent pour prendre soin de sa vie ?

使徒行传第9章:保罗的归信与蒙召|张大卫牧师

那个原本要去捉拿基督徒的人,成了传扬耶稣基督的见证人。《使徒行传》第9章中保罗归信的经历,显明了主的恩典如何改变一个人的信念与人生目标。张大卫牧师(美国 Olivet University 创办人)的讲道,探讨了这一转变如何进一步延伸为福音的传扬、信仰群体中的相伴同行,以及关怀生命的使命。在承认自己相信主之后,我们的言语与选择究竟指向何方?

悔改始于放下对自己判断的确信

扫罗既有知识,也有热心。然而,他从耶路撒冷前往大马士革,是要继续捉拿跟随耶稣的人。忠于自己的信念,并不代表人生的方向就一定正确。主在这条路上介入他的生命,使他在自己曾经拒绝的耶稣基督面前,放下自己的判断。

对于扫罗眼中有仿佛鳞片的东西掉下来的场景,这篇讲道将其理解为不信与固有思维被除去的属灵转变。人也由此开始在神的话语面前,重新审视过去视为理所当然的判断。归信,是承认耶稣基督为主,让祂的话语引领人生方向的转变。 悔改既需要诚实地承认错误,也需要让自己的选择随着这份告白而改变。

归信的起点,是主主动临到扫罗的恩典。他在敌对教会时所领受的呼召,使他意识到自己的认识错在何处。因此,若只把悔改看作一种必须靠自己成为更好之人的压力,就容易忽略那位使他回转的主。当原本试图独自承担一切改变责任的人开始倚靠主时,聆听话语并顺服的生活,便有了新的起点。

这一问题也延续到我们今天的读经默想中。如果我们只是寻找经文来支持自己早已认定正确的结论,那么,即使读着神的话语,原有的判断也可能丝毫未变。当我们还没听完别人的话,就用信仰的语言先下结论时,也需要省察自己。以神的话语省察自己的人,既会察看自己确信的程度,也会追问这份确信究竟跟随的是谁。

但这并不意味着,意识到错误的人必须被自己的过去困住。呼召扫罗的恩典提醒我们,不可轻率地否定任何人改变的可能。这篇讲道之所以将神的计划与呼召联系起来,正是因为呼召的源头在于主。人曾经夸耀自己拥有的知识与经验,或只看见自身能力的不足;如今,目光却开始转向:我能用自己所有的去服侍谁?

不耽延地传扬所领受的福音

对扫罗而言,这个新的方向很快便体现为见证。归信之后,他开始在会堂里宣讲耶稣是神的儿子,也是基督。他一度拒绝的名,如今成了他要向人传扬的救恩佳音。归信的意义,既体现在他舍弃了什么,也清楚地显明在他开始相信谁、为着什么而活。

张大卫牧师在这里强调,不要把传扬福音的事推迟。推动扫罗作见证的,是他对耶稣基督是谁的确信。当那位为我们的罪付上赎价并且复活的主居于福音的中心时,传福音便成为把自己所领受的恩典分享给别人的行动。即使我们谈到教会生活的喜乐,或个人所得到的益处,也要守住这个中心,让聆听的人能够认识耶稣。

这需要让学习与实践并进的智慧。这篇讲道在鼓励人立即作见证的同时,也强调研经、祷告、默想和信仰上的栽培。即使还不能回答所有问题,我们仍能诚实地传讲自己现在所明白、所相信的福音。对于自己不懂的事,不装作知道,而是继续学习;这种态度与不耽延分享所领受恩典的顺服,能够一同成长。

因此,回顾传福音的谈话时,除了说得是否流畅,我们还有其他值得省察的地方:是否充分倾听了对方的疑问?在解释耶稣是谁的时候,是否只顾着证明自己是对的?当我们在家庭或工作场所有机会谈论信仰时,可以和对方一同探讨他尚未理解的部分。当我们清楚认识神的话语,并带着爱去关怀人,见证便成为一份尊重对方的邀请。

筐子与巴拿巴守护的福音之路

就在扫罗如此传扬福音时,死亡的威胁临到了他。他被人用筐子从大马士革的城墙上放下,逃离险境;到了耶路撒冷,他也因遭到反对而不得不转往别处。蒙主呼召,并不意味着前路的危险就此消失。扫罗放胆作见证,同时也接受信仰群体的保护与帮助。这让我们想到,承担使命的人承认自己的软弱、接受他人的帮助,也是信心旅程的一部分。

对耶路撒冷的门徒来说,还有另一重困难。他们惧怕这个过去曾逼迫他们的扫罗。就在这时,巴拿巴将他介绍给使徒,帮助他融入教会群体。这一幕表明,一个人的改变要在教会中被接纳并继续成长,需要有人付出努力,把彼此连接起来,帮助建立信任。

今天,教会迎接初信者时,也可以思想这样的同行。在鼓励一个人传扬福音的同时,也需要有人愿意与他建立关系,倾听他所面对的疑问与困难。如果只问事工的成果,就可能忽略疲惫之人的处境;如果只记得他过去的模样,就难以看见他为重新生活所付出的努力。在危险面前为人寻找出路,在信心成长的过程中陪伴左右,这都是群体所领受的责任。

这篇讲道将保罗的受苦与教会的平安放在一起思考,提醒我们,一个人的奉献与付出能够扶持他人的信心。《使徒行传》记载,犹太、加利利和撒马利亚各地的教会,在对主的敬畏与圣灵的安慰中成长。当我们记得那位扶持教会成长的主,就不会把教会的未来只寄托在某一个人的热情上。扫罗的故事之后接续彼得的事工,也显明神借着不同的人作工。

彼得的医治与大比大的衣裳所指向的爱

彼得在吕大遇见的以尼雅,已经八年不能起身了。彼得宣告耶稣基督使他得医治,清楚指出施行医治的是谁。人应当注目的是那位使生命得着恢复的主。服侍者若高举自己的名,就可能使人的目光从耶稣身上移开,因此,即使在行异能的时刻,也需要保持谦卑。

接着,在约帕,已经死去的大比大在彼得祷告后又活了过来。许多人得知这件事,便信了主。神迹使人转向生命的主。循着《使徒行传》第9章读下去,我们会看见,归信、作见证与医治的场景,都指向耶稣基督。

大比大生前的生活,也显明了这信仰的内涵。她是一位为寡妇和穷人缝制衣裳、施行周济的女门徒。她所做的衣裳,使我们思想爱如何关照一个人的实际需要。我们也可以分享自己的时间与技能,或帮助有需要的人获得适当的援助。那些帮助他人度过每一天的辛劳,不能仅凭外在可见的成果来衡量其全部价值。

张大卫牧师也劝勉我们,在为医治祷告的同时,要尊重医护人员的付出和适当的治疗。为病人的康复祷告,也伴随着关照他当下所承受的不便与需要的责任。即使看不到医治的果效,也要持守信心,继续给予关怀。将荣耀归给主的信仰,体现在始终珍视、善待需要帮助之人的态度上。

这样的爱,也走向教会习以为常的界限之外。这篇讲道将彼得住在硝皮匠西门家中的情景,视为迈向外邦宣教的预示。这一幕让我们省察:是否因为关系的亲疏、文化的差异,就预先划定了福音应当传向的对象?教会需要走出自己的舒适圈,寻找接近那些尚未认识主之人的道路。讲道所提到的向不同文化群体传扬福音,以及借助媒体传播福音,也都与这一使命相连,就是更加贴近人们实际生活的处境。

那曾改变扫罗前往大马士革脚步的恩典,今天也照亮我们的选择。如果我们曾把传讲福音的事推到以后,或看见他人的需要却径直走过,就可以从那里开始一个小小的顺服。此刻,我所领受的呼召,正引领我向谁传扬福音,又走进谁的生活,与之同行并给予关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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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の働き9章、パウロの回心と召命|張ダビデ牧師

キリスト者を捕らえに向かっていた人が、イエス・キリストを伝える証人となった。使徒の働き9章に記されたパウロの回心は、主の恵みが一人の人の確信と人生の目的を変えた出来事である。張ダビデ牧師(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の説教は、その変化が福音宣教と共同体の支え合い、そしていのちを守り支える使命へとつながっていく過程をたどる。信じると告白した後、私たちの言葉と選択は、どこへ向かっているだろうか。

自分の正しさへの確信を手放すとき、悔い改めが始まる

サウロには知識も熱心さもあった。しかし、彼がエルサレムからダマスコにまで赴いて行おうとしていたのは、イエスに従う人々を捕らえることだった。自分の信念に忠実であるというだけで、人生の方向まで正しくなるわけではない。主はその歩みに介入され、彼が拒んでいたイエス・キリストの前で、自らの判断を手放すように導かれた。

サウロの目からうろこのようなものが落ちる場面を、この説教は、不信仰や慣れ親しんだ考え方が取り除かれる霊的な変化として読み解く。それまで当然だと思っていた判断も、みことばに照らして見つめ直すようになるのである。回心とは、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認め、自分の生きる道をそのみことばに委ねる変化である。 悔い改めには、自分の過ちを正直に認め、その告白に従って選択を変えていくことが伴う。

回心の出発点には、サウロを先に訪ねてくださった主の恵みがある。教会に敵対していたさなかに受けた召しによって、彼は自分が何を見誤っていたのかに気づかされた。だからこそ、悔い改めを「自分の力でもっと良い人間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重荷としてだけ受け止めると、彼を立ち返らせた方を見失いやすい。みことばを聞いて従う歩みは、変わる責任をすべて一人で背負おうとしていた人が、主に頼るところから新たに始まる。

聖書を黙想する今日の私たちにも、この問いは向けられている。すでに正しいと決めた結論を裏づける聖句ばかり探しているなら、みことばを読んでいても、自分の判断は変わらないままかもしれない。誰かの話を最後まで聞かず、信仰の言葉を用いて結論を先に下してしまうときにも、自分を振り返る必要がある。みことばに照らして自分を見つめる人は、確信の強さとともに、その確信をもって自分が誰に従っているのかをも問い直す。

だからといって、過ちに気づいた人が、自分の過去に閉じ込められたままでいなければならないわけではない。サウロを召してくださった主の恵みは、誰かが変わる可能性を、私たちが性急に閉ざすことを許さない。この説教が神のご計画と召命を結びつけるのも、召しの出発点を主に置いているからである。自分の知識や経験を誇ったり、能力の不足ばかり気にしたりしていたまなざしは、今、自分に与えられたものを用いて誰に仕えることができるのかへと向けられる。

受け取った福音を先延ばしにせず伝えるということ

サウロにとって、その新しい方向は、すぐに証しとなって現れた。回心後、彼は会堂で、イエスが神の御子であり、キリストであると宣べ伝え始めた。かつて拒んでいた御名が、今や他の人々に伝えるべき救いの知らせとなったのである。回心の意味は、何を捨てたのかだけでなく、誰を信じ、何のために生きるようになったのかによっても鮮明にな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で、福音を伝えることを先延ばしにしない姿勢を強調する。サウロの証しを導いたのは、イエス・キリストがどなたであるかという確信だった。私たちの罪を贖い、よみがえられた主が福音の中心におられるとき、伝道は、自分が受けた恵みを他の人に手渡す営みとなる。教会で味わう喜びや自分が得た益を紹介するときにも、聞く人がイエスを知ることができるよう、その中心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こには、学びと実践をともに続けていく知恵が必要である。この説教は、すぐに証しすることを勧めると同時に、聖書研究と祈り、黙想と信仰の養いも重んじている。まだすべての問いに答えられなくても、今、自分が理解し、信じている福音を誠実に伝えることはできる。知らないことを知っているかのように語らず、学び続ける姿勢は、受けた恵みを分かち合う機会を先延ばしにしない従順とともに育っていく。

だからこそ、伝道の会話を振り返るときには、どれほど流暢に話せたか以外にも、確かめるべきことがある。相手の問いに十分耳を傾けただろうか。イエスについて語る間に、自分の正しさを証明することに夢中になってはいなかっただろうか。家庭や職場で信仰について話す機会があれば、相手が理解できなかった点を一緒に考えることができる。みことばについての確かな知識と人への愛が出会うとき、証しは相手を尊重する招きとなる。

かごとバルナバが守り抜いた福音の道

こうして福音を宣べ伝えるサウロに、命の危険が迫った。彼はかごに入ってダマスコの城壁から下ろされ、難を逃れた。エルサレムでも反対に遭い、別の場所へ移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主に召されたという事実が、行く手の危険を取り除いたわけではない。サウロは大胆に証ししながらも、自分を守ってくれる共同体の助けを受けた。この姿は、使命を果たす者が自分の弱さを認め、助けを受け入れることもまた、信仰の歩みの一部であると考えさせる。

エルサレムの弟子たちには、別の難しさがあった。彼らは、かつて自分たちを迫害していたサウロを恐れていた。そのとき、バルナバが彼を使徒たちに紹介し、共同体に受け入れられるよう助けた。この場面は、一人の人の変化が教会の中で受け止められ、育まれていくまでには、人と人をつなぎ、信頼を築くための働きが必要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

今日、教会が新しく信仰を持った人を迎えるときにも、この寄り添う歩みについて考えることができる。福音を伝えるよう励ますとともに、その人が抱える問いや困難に耳を傾ける関係が必要である。奉仕の成果ばかり尋ねれば、疲れた人の置かれた状況を見落としかねない。過去の姿ばかり覚えていれば、新しく生きようとする努力に気づくことは難しい。危険が迫るときには逃れる道を備え、信仰が育つ間はそばにいること。それが共同体に託された責任である。

この説教は、パウロの苦難と教会の平安を併せて読みながら、ある人の献身が他の人の信仰を支えるという事実に目を向ける。使徒の働きは、ユダヤ、ガリラヤ、サマリア全土の教会が、主を畏れ、聖霊の慰めのうちに成長していったと伝えている。その成長を支えてくださる方を覚えるなら、教会の将来を一人の情熱だけに委ねることはなくなる。サウロの物語の後にペテロの働きが続く流れも、神がさまざまな人々を通して働かれることを示している。

ペテロによる癒やしとタビタの衣服が示す愛

リダでペテロが出会ったアイネアは、八年間、起き上がることのできなかった人だった。ペテロは、イエス・キリストが彼を癒やしてくださると宣言し、癒やしをもたらす方が誰なのかを明らかにした。目を向けるべき方は、いのちを回復させてくださる主である。奉仕に携わる者が自分の名を前面に出すと、人々のまなざしがイエスから離れてしまいかねない。だからこそ、力あるわざを行うときにも謙遜が必要なのである。

ヨッパでは、亡くなったタビタが、ペテロの祈りの中で生き返る出来事が続く。多くの人がこのことを知り、主を信じるようになった。奇跡は人々を、いのちの主へと向かわせた。使徒の働き9章を読み進めると、回心と証し、そして癒やしの場面が、いずれもイエス・キリストを指し示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

タビタがどのように生きてきたかも、その信仰の中身を示している。彼女は、やもめや貧しい人々のために衣服を作り、慈善の働きに励んだ弟子だった。彼女が作った衣服は、愛が一人ひとりの具体的な必要をどのように受け止めるのかを考えさせる。私たちにも、自分の時間や技術を分かち合ったり、必要な支援につないだりする奉仕ができる。誰かの一日の暮らしを支える労苦は、目に見える成果だけでは、その価値を十分に測ることができない。

張ダビデ牧師は、癒やしを祈り求めるとともに、医療従事者の働きと適切な治療も尊重するよう勧める。病む人の回復を願う祈りには、その人が今日抱えている不自由や必要に目を向ける責任が伴う。癒やしが目に見える形で現れないときにも、信仰を保ち、支え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主に栄光を帰す信仰は、助けを必要とする人を最後まで大切にする姿勢に表れる。

この愛は、教会が慣れ親しんできた境界の外へも向かう。皮なめし職人のシモンの家に滞在したペテロの姿を、この説教は、異邦人宣教へと進んでいくことを予告する場面として読み解く。親しい間柄にないことや文化の違いを理由に、福音を届ける相手をあらかじめ限定してはいないかと、自らを省みさせる場面である。教会は、自分たちにとって居心地のよい場所を越えて、まだ主を知らない人々に近づく道を探さなければならない。説教がさまざまな文化圏での宣教や、メディアを通じた福音宣教に言及するのも、人々が暮らす現場に近づこうとする使命と結びついている。

ダマスコへ向かっていたサウロの歩みを変えた恵みは、今日の私たちの選択をも照らしている。福音を語る機会を先延ばしにしたり、誰かの必要に気づきながら通り過ぎたりしたことがあるなら、そこから小さな従順の一歩を踏み出すことができる。今、私に与えられている召しは、誰に福音を伝え、誰の人生に寄り添って支えることへとつながっているだ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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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chos 9: la conversión y el llamamiento de Pablo | Pastor David Jang

El hombre que iba a arrestar a los cristianos se convirtió en testigo de Jesucristo. La conversión de Pablo, narrada en Hechos 9, muestra cómo la gracia del Señor transformó las convicciones y el propósito de vida de una persona. El sermón del pastor David Jang, fundador de Olivet University en Estados Unidos, examina cómo esa transformación condujo a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al acompañamiento de la comunidad y a la misión de cuidar la vida. Después de confesar nuestra fe, ¿hacia dónde se dirigen nuestras palabras y decisiones?

El arrepentimiento comienza al dejar de aferrarnos a nuestras propias certezas

Saulo tenía conocimiento y fervor. Sin embargo, lo que pretendía hacer al viajar de Jerusalén a Damasco era detener a quienes seguían a Jesús. Ser fiel a las propias convicciones no garantiza que la dirección de nuestra vida sea la correcta. El Señor intervino en aquel camino y lo llevó a dejar de aferrarse a su propio juicio ante Jesucristo, a quien hasta entonces había rechazado.

El sermón interpreta la escena en la que algo semejante a escamas cae de los ojos de Saulo como una transformación espiritual en la que se desprenden la incredulidad y las formas de pensar arraigadas. Incluso los juicios que antes se daban por sentados comienzan a examinarse de nuevo a la luz de la Palabra. La conversión es una transformación por la que reconocemos a Jesucristo como Señor y confiamos la dirección de nuestra vida a su Palabra. El arrepentimiento implica reconocer con sinceridad nuestros errores y cambiar nuestras decisiones de acuerdo con esa confesión.

En el origen de la conversión está la gracia del Señor, que tomó la iniciativa de buscar a Saulo. El llamamiento que recibió cuando todavía se oponía a la Iglesia le permitió comprender en qué se había equivocado. Por eso, si entendemos el arrepentimiento únicamente como la carga de tener que convertirnos en mejores personas por nuestras propias fuerzas, corremos el riesgo de perder de vista a quien cambió el rumbo de su vida. La vida de escucha y obediencia a la Palabra comienza de nuevo cuando quien antes pretendía cargar a solas con toda la responsabilidad del cambio aprende a depender del Señor.

Esta pregunta también se hace presente en nuestra meditación bíblica de hoy. Si solo buscamos versículos que respalden conclusiones que ya hemos dado por correctas, podemos leer la Palabra sin que cambie nuestro propio juicio. También necesitamos examinarnos cuando nos apresuramos a emitir un juicio con el lenguaje de la fe sin haber escuchado hasta el final lo que otra persona tiene que decir. Quien se examina a la luz de la Palabra considera tanto la firmeza de sus convicciones como a quién sigue al sostenerlas.

Esto no significa que quien reconoce sus errores deba quedar preso de su pasado. La gracia que llamó a Saulo nos impide descartar precipitadamente la posibilidad de que alguien cambie. El sermón vincula el plan de Dios con el llamamiento porque sitúa en el Señor el origen de ese llamado. La mirada que antes se enorgullecía de sus conocimientos y experiencia, o se detenía únicamente en sus limitaciones, ahora se pregunta a quién puede servir con lo que tiene.

Compartir sin demora el evangelio que hemos recibido

En Saulo, esa nueva dirección se manifestó enseguida en su testimonio. Después de su conversión, comenzó a proclamar en las sinagogas que Jesús era el Hijo de Dios y el Mesías. El nombre que antes rechazaba se convirtió en la buena noticia de salvación que ahora anunciaba a los demás. El significado de su conversión se ve con claridad tanto en lo que dejó atrás como en aquel en quien llegó a creer y en el propósito por el que comenzó a vivir.

Al comentar este pasaje,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la importancia de no posponer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Lo que impulsaba el testimonio de Saulo era la certeza de quién es Jesucristo. Cuando el Señor, que expió nuestros pecados y resucitó, ocupa el centro del evangelio, evangelizar se convierte en compartir con otros la gracia que hemos recibido. Incluso cuando hablamos de la alegría de pertenecer a la Iglesia o de los beneficios que hemos experimentado personalmente, debemos mantener ese centro para que quienes nos escuchan puedan conocer a Jesús.

Para ello hace falta la sabiduría de avanzar a la vez en el aprendizaje y la práctica. Al animarnos a dar testimonio sin demora, el sermón también insiste en el estudio de la Palabra, la oración, la meditación y la formación en la fe. Aunque todavía no podamos responder a todas las preguntas, podemos compartir con honestidad el evangelio que ya comprendemos y creemos. La disposición a seguir aprendiendo, sin fingir que sabemos lo que desconocemos, crece junto a la obediencia que no deja pasar las oportunidades de compartir la gracia recibida.

Por eso, al reflexionar sobre nuestras conversaciones acerca del evangelio, debemos considerar algo más que nuestra elocuencia. Necesitamos preguntarnos si hemos escuchado con suficiente atención las preguntas de la otra persona y si, al explicar quién es Jesús, no nos hemos concentrado en demostrar que teníamos razón. Cuando surge una oportunidad de hablar de la fe en la familia o en el trabajo, podemos examinar juntos aquello que la otra persona no ha comprendido. Cuando un conocimiento claro de la Palabra se une al amor por las personas, el testimonio se convierte en una invitación respetuosa.

La cesta y Bernabé: el apoyo que mantuvo abierto el camino del evangelio

Mientras Saulo proclamaba así el evangelio, se vio amenazado de muerte. Escapó de Damasco al ser bajado en una cesta por la muralla, y también en Jerusalén tuvo que trasladarse a otro lugar debido a la oposición. Haber recibido el llamamiento del Señor no eliminó los peligros del camino. Saulo daba testimonio con valentía y, al mismo tiempo, recibía la ayuda de la comunidad que lo protegía. Esta escena nos recuerda que reconocer nuestra fragilidad y aceptar ayuda también forman parte del camino de fe de quienes cumplen una misión.

Los discípulos de Jerusalén afrontaban otra dificultad: tenían miedo de Saulo, que antes los había perseguido. Entonces Bernabé lo presentó a los apóstoles y lo ayudó a integrarse en la comunidad. La escena muestra que, para que la transformación de una persona sea acogida y pueda madurar dentro de la Iglesia, hace falta el esfuerzo de acercar a las personas y ayudar a construir confianza.

También hoy, al recibir a quienes comienzan a creer, la Iglesia puede recordar la importancia de ese acompañamiento. Además de animarlos a proclamar el evangelio, es necesario ofrecerles relaciones en las que se escuchen sus preguntas y dificultades. Si solo preguntamos por los resultados del ministerio, podemos pasar por alto la situación de quienes están agotados; si solo recordamos cómo eran antes, puede costarnos reconocer sus esfuerzos por vivir de una manera nueva. Facilitarles una salida ante el peligro y permanecer a su lado mientras crece su fe son responsabilidades confiadas a la comunidad.

El sermón considera conjuntamente el sufrimiento de Pablo y la paz de la Iglesia, y llama la atención sobre el hecho de que la entrega de unos sostiene la fe de otros. Hechos relata que la Iglesia en toda Judea, Galilea y Samaria crecía, viviendo en el temor del Señor y en el consuelo del Espíritu Santo. Cuando recordamos a quien sostiene ese crecimiento, evitamos hacer que el futuro de la Iglesia dependa únicamente del entusiasmo de una persona. Que el relato continúe con el ministerio de Pedro después de la historia de Saulo también muestra que Dios obra por medio de diversas personas.

El amor que revelan las sanidades de Pedro y las prendas de Tabita

En Lida, Pedro encontró a Eneas, un hombre que llevaba ocho años sin poder levantarse de su lecho. Al anunciarle que era Jesucristo quien lo sanaba, Pedro dejó claro quién era el autor de la sanidad. Quien debe ocupar el centro de nuestra atención es el Señor, que restaura la vida. Si quien ejerce el ministerio pone su propio nombre en primer plano, puede apartar de Jesús la mirada de las personas; por eso, la humildad es necesaria incluso cuando se realizan milagros.

En Jope, el relato continúa con Tabita, quien murió y volvió a la vida tras la oración de Pedro. Muchos se enteraron de lo ocurrido y creyeron en el Señor. El milagro dirigió a las personas hacia el Señor de la vida. Al recorrer Hechos 9, vemos que la conversión, el testimonio y las escenas de sanidad apuntan todos a Jesucristo.

La manera en que Tabita había vivido también muestra el contenido de esa fe. Era una discípula que socorría a las viudas y a los pobres y confeccionaba ropa para ellos. Las prendas que había hecho nos invitan a pensar en cómo el amor atiende las necesidades reales de una persona. También nosotros podemos servir compartiendo nuestro tiempo y nuestras habilidades, o ayudando a las personas a encontrar el apoyo que necesitan. El valor de los esfuerzos que permiten a alguien afrontar un día más no puede medirse únicamente por sus resultados visibles.

El pastor David Jang anima a orar por la sanidad y a respetar también el trabajo de los profesionales de la salud y los tratamientos adecuados. La oración por la recuperación de una persona enferma lleva consigo la responsabilidad de atender a las dificultades y necesidades que experimenta hoy. Aun cuando no se vean los resultados de la sanidad, debemos perseverar en la fe y continuar cuidando de ella. La fe que da gloria al Señor se manifiesta en una actitud que valora y cuida hasta el final a quienes necesitan ayuda.

Este amor también se extiende más allá de los límites que resultan familiares a la Iglesia. El sermón interpreta la estancia de Pedro en casa de Simón el curtidor como un anticipo de la misión entre los gentiles. La escena nos invita a preguntarnos si estamos delimitando de antemano a quién debe llegar el evangelio según nuestros vínculos personales o las diferencias culturales. La Iglesia debe ir más allá de su propia comodidad y buscar caminos para acercarse a quienes todavía no conocen al Señor. La mención que hace el sermón de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en diversas culturas y a través de los medios de comunicación también se vincula con la misión de acercarse a los entornos en los que viven las personas.

La gracia que cambió el rumbo de Saulo cuando se dirigía a Damasco también ilumina hoy nuestras decisiones. Si hemos pospuesto una oportunidad de hablar del evangelio o hemos pasado de largo al ver la necesidad de alguien, podemos comenzar allí con un pequeño acto de obediencia. ¿A quién estoy anunciando el evangelio y a quién estoy acompañando y cuidando en respuesta al llamamiento que hoy se me ha confi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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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바울의 회심과 소명 | 장재형 목사

그리스도인을 붙잡으러 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 사도행전 9장에 나타난 바울의 회심은 주님의 은혜가 한 사람의 확신과 삶의 목적을 바꾼 사건이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설교는 그 변화가 복음 전파와 공동체의 동행, 생명을 돌보는 사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핀다. 믿는다고 고백한 뒤 우리의 말과 선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자기 확신을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 회개

사울에게는 지식도 열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 이어 가려던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방향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그 길에 개입하셔서, 그가 거부하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게 하셨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는 장면을 이 설교는 불신앙과 익숙한 생각이 벗겨지는 영적 변화로 읽는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판단도 말씀 앞에서 새롭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삶의 방향을 맡기는 변화다. 회개에는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고백에 따라 선택을 바꾸는 일이 함께 놓인다.

회심의 출발점에는 사울을 먼저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가 있다. 교회를 대적하던 때에 받은 부르심이 그가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깨닫게 했다. 그러므로 회개를 자신의 힘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으로만 받아들이면, 그를 돌이키신 분을 놓치기 쉽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은 변화의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려던 사람이 주님을 의지하는 데서 새롭게 시작된다.

오늘 우리의 성경 묵상에도 이 질문은 이어진다. 이미 옳다고 정한 결론을 뒷받침할 구절만 찾고 있다면, 말씀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판단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신앙의 언어로 결론부터 내리는 순간에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씀에 나를 비추는 사람은 확신의 크기와 함께 그 확신이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도 살핀다.

그렇다고 잘못을 깨달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울을 부르신 은혜는 우리가 누구의 변화 가능성도 성급하게 닫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설교가 하나님의 계획과 소명을 연결하는 까닭도 부르심의 출발점을 주님께 두기 때문이다. 가진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거나 부족한 능력만 헤아리던 시선이, 이제 그것으로 누구를 섬길 수 있는지를 향한다.

받은 복음을 미루지 않고 전한다는 것

사울에게 그 새로운 방향은 곧 증언으로 드러났다. 회심 후 그는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때 거부하던 이름이 이제 다른 사람에게 전할 구원의 소식이 된 것이다. 회심의 의미는 그가 무엇을 버렸는지만큼이나, 누구를 믿고 무엇을 위해 살게 되었는지에서 선명해진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미루지 않는 태도를 강조한다. 사울의 증언을 이끈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확신이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복음의 중심에 계실 때, 전도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된다. 교회의 즐거움이나 개인이 얻은 유익을 소개할 때에도 듣는 이가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그 중심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는 배움과 실천을 함께 이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설교는 즉각적인 증언을 권하면서 말씀 연구와 기도, 묵상과 양육도 강조한다. 아직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더라도 지금 이해하고 믿는 복음은 정직하게 전할 수 있다. 모르는 내용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고 계속 배우는 태도는, 받은 은혜를 나눌 기회를 미루지 않는 순종과 나란히 자란다.

그래서 전도의 대화를 돌아볼 때에는 얼마나 유창하게 말했는지 외에도 살필 것이 있다. 상대의 질문을 충분히 들었는지, 예수님을 설명하는 동안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지는 않았는지 묻게 된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믿음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말씀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만날 때, 증언은 상대를 존중하는 초대가 된다.

광주리와 바나바가 지켜 낸 복음의 길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울에게 죽음의 위협이 닥쳤다. 그는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벽을 내려와 피신했고, 예루살렘에서도 반대에 부딪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앞길의 위험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사울은 담대히 증언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았다. 이 모습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들이는 일도 믿음의 여정에 속함을 생각하게 한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박해하던 사울을 두려워했다. 그때 바나바가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하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장면은 한 사람의 변화가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자라기까지, 서로를 연결하고 신뢰를 돕는 수고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오늘 교회가 새로 믿는 사람을 맞을 때에도 그 동행을 생각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는 것과 함께, 그 사람이 겪는 질문과 어려움을 들어 줄 관계가 필요하다. 사역의 성과만 묻는다면 지친 사람의 형편을 놓칠 수 있고, 과거의 모습만 기억한다면 새롭게 살아가려는 노력을 알아보기 어렵다. 위험 앞에서는 피할 길을 마련하고, 믿음이 자라는 동안에는 곁을 지키는 일이 공동체에 맡겨진 책임이다.

설교는 바울의 고난과 교회의 평안을 함께 읽으며, 누군가의 헌신이 다른 이의 믿음을 지탱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도행전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가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 가운데 자라갔다고 전한다. 그 성장을 붙드시는 분을 기억하면 교회의 미래를 한 사람의 열정에만 맡기지 않게 된다. 사울의 이야기 뒤에 베드로의 사역이 이어지는 흐름도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보여 준다.

베드로의 치유와 다비다의 옷이 가리키는 사랑

룻다에서 베드로가 만난 애니아는 여덟 해 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하며 치유의 주체를 분명히 한다. 주목받아야 할 분은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이다. 사역자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면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기에, 능력을 행하는 순간에도 겸손이 필요하다.

욥바에서는 다비다가 죽었다가 베드로의 기도 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알고 주님을 믿게 되었다. 기적은 사람들을 생명의 주님께 향하게 했다. 사도행전 9장을 따라 읽으면 회심과 증언, 치유의 장면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비다가 살아온 모습도 그 믿음의 내용을 보여 준다. 그는 과부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옷을 지어 주며 구제하던 제자였다. 그가 만든 옷은 사랑이 한 사람의 실제 필요를 어떻게 살피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도 가진 시간과 기술을 나누거나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섬김이 가능하다. 누군가의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수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으로 그 가치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장재형 목사는 치유를 위해 기도하면서 의료인의 수고와 적절한 치료도 존중하도록 권한다. 병든 이의 회복을 바라는 기도에는 그 사람이 오늘 겪는 불편과 필요를 살피는 책임이 따른다. 치유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믿음을 지키며 돌봄을 이어 가야 한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끝까지 소중히 대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이 사랑은 교회가 익숙하게 여기는 경계 밖으로도 향한다. 가죽을 다루는 시몬의 집에 머문 베드로의 모습을 이 설교는 이방 선교를 향해 나아가는 예고로 읽는다. 친분과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복음이 향할 대상을 미리 정해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교회는 자신의 편안함을 넘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길을 찾아야 한다. 설교가 다양한 문화권과 미디어를 통한 복음 전파를 언급하는 것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명과 연결된다.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의 발걸음을 바꾸신 은혜는 오늘 우리의 선택도 비춘다. 복음을 말할 기회를 미루거나 누군가의 필요를 보고도 지나쳤던 순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작은 순종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부르심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누구의 삶을 함께 돌보는 일로 이어지고 있는가?

Acts 9: Paul’s Conversion and Calling | Pastor David Jang

A man on his way to arrest Christians became a witness proclaiming Jesus Christ. Paul’s conversion in Acts 9 reveals how the Lord’s grace transformed one person’s convictions and purpose in life. In his sermon, Pastor David Jang, founder of Olivet University in the United States, traces how this transformation l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the companionship of the Christian community, and a mission of caring for others. After professing our faith, where are our words and choices leading us?

Repentance Begins When We Surrender Our Own Certainties

Saul had both knowledge and zeal. Yet the task he intended to carry out on his journey from Jerusalem to Damascus was to arrest those who followed Jesus. Remaining true to our convictions does not necessarily mean we are heading in the right direction. The Lord intervened on that road, bringing Saul to surrender his own judgment before Jesus Christ, whom he had rejected.

The sermon interprets the moment when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s a picture of spiritual transformation, in which unbelief and familiar patterns of thought fall away. Even judgments once taken for granted come under fresh examination in the light of God’s Word. Conversion is a transformation in which we acknowledge Jesus Christ as Lord and entrust the direction of our lives to his Word. Repentance involves both honestly admitting our wrongdoing and changing our choices in keeping with that confession.

At the beginning of Saul’s conversion stands the grace of the Lord who sought him out first. The call he received while opposing the church helped him recognize where his understanding had gone wrong. If we regard repentance only as the burden of becoming better people through our own strength, we can easily lose sight of the Lord who turned Saul’s life around. A life of listening to the Word and obeying it begins afresh when someone who has tried to shoulder the entire responsibility for change learns to depend on the Lord.

This question also applies to our own meditation on Scripture. If we search only for verses that support conclusions we have already decided are right, we may read the Word while leaving our judgments unchanged. We also need to examine ourselves when we use the language of faith to pronounce a judgment before hearing someone out. Those who examine themselves in the light of the Word consider both the strength of their convictions and whom those convictions are leading them to follow.

Recognizing our wrongdoing, however, does not mean that we must remain trapped in our past. The grace that called Saul keeps us from prematurely ruling out anyone’s possibility of change. The sermon connects God’s plan with our calling because it locates the source of that calling in the Lord. Our attention shifts from boasting in our knowledge and experience, or dwelling only on our limited abilities, toward asking whom we can serve with what we have.

Sharing the Gospel We Have Received Without Delay

For Saul, this new direction soon became visible in his witness. After his conversion, he began proclaiming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nd the Christ. The name he had once rejected had now become the message of salvation he was to share with others. The meaning of his conversion becomes clear both in what he left behind and in whom he came to trust and what he now lived for.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here the importance of sharing the gospel without delay. Saul’s witness was driven by his conviction about who Jesus Christ is. When the Lord who atoned for our sins and rose from the dead remains at the center of the gospel, evangelism becomes an act of sharing with others the grace we have received. Even when we speak about the joys of church life or the benefits we have personally experienced, we need to preserve that focus so that those listening can come to know Jesus.

This calls for the wisdom to continue learning while putting our faith into practice. Alongside its encouragement to bear witness immediately, the sermon also emphasizes the study of Scripture, prayer, meditation, and discipleship. We may not yet be able to answer every question, but we can honestly share the gospel as we currently understand and believe it. A willingness to keep learning, without pretending to know what we do not, grows alongside the obedience that responds to opportunities to share the grace we have received.

When we reflect on conversations about faith, there is more to consider than how eloquently we spoke. Did we listen carefully to the other person’s questions? As we spoke about Jesus, did we become preoccupied with proving ourselves right? When opportunities arise to talk about faith at home or at work, we can explore together whatever the other person finds difficult to understand. When a clear knowledge of Scripture meets love for people, our witness becomes an invitation offered with respect.

A Basket and Barnabas: Keeping the Way Open for the Gospel

As Saul proclaimed the gospel, his life came under threat. He escaped Damascus by being lowered in a basket over the city wall, and opposition in Jerusalem later forced him to move elsewhere as well. Being called by the Lord did not remove the dangers ahead. Even as he bore witness boldly, Saul accepted the help of the community that sought to protect him. His example reminds us that acknowledging our weakness and accepting help are also part of the journey of faith for those who seek to fulfill their mission.

The disciples in Jerusalem faced another difficulty: they were afraid of Saul, who had once persecuted them. Barnabas then introduced him to the apostles and helped him find a place within the community. This scene shows that for a person’s transformation to be welcomed and nurtured within the church, people must do the work of bringing others together and helping trust grow.

We can remember that companionship as we welcome new believers into the church today. Along with encouragement to share the gospel, they need relationships in which someone will listen to their questions and struggles. If we ask only about ministry results, we may overlook the circumstances of those who are weary. If we remember only a person’s past, we may fail to recognize their efforts to live a new life. Providing a way of escape in times of danger and staying alongside people as their faith grows are responsibilities entrusted to the community.

The sermon considers Paul’s suffering alongside the peace of the church, drawing attention to how one person’s dedication can sustain the faith of others. Acts tells us that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grew in reverence for the Lord and in the comfort of the Holy Spirit. Remembering who sustains that growth keeps us from entrusting the church’s future to one person’s zeal alone. The transition from Saul’s story to Peter’s ministry also shows that God works through many people.

The Love Revealed in Peter’s Healings and Tabitha’s Garments

In Lydda, Peter met Aeneas, a man who had been unable to rise from his bed for eight years. Peter declared that Jesus Christ was making him well, clearly identifying the source of the healing. Our attention should rest on the Lord who restores life. When ministers put their own names first, they can draw people’s attention away from Jesus. Humility is needed even when mighty works are being done.

In Joppa, the account continues with Tabitha, who died and was brought back to life after Peter prayed. Many people learned of what had happened and came to believe in the Lord. The miracle turned people toward the Lord of life. As we read through Acts 9, we see that conversion, witness, and healing all point to Jesus Christ.

The way Tabitha had lived also shows what that faith looks like in practice. She was a disciple who made clothes for widows and the poor and gave generously to those in need. The garments she made invite us to reflect on how love attends to a person’s actual needs. We, too, can serve by sharing our time and skills or connecting people with the help they need. The value of the work that helps someone get through another day cannot be fully measured by visible results alone.

Pastor David Jang encourages prayer for healing while also respecting the work of medical professionals and appropriate treatment. Prayer for a sick person’s recovery carries with it the responsibility to attend to the discomfort and needs that person faces today. Even when healing is not evident, we must hold fast to faith and continue to care. Faith that glorifies the Lord is revealed in the way we continue to value and care for people in need.

This love also reaches beyond the boundaries the church has grown accustomed to. The sermon interprets Peter’s stay in the home of Simon the tanner as a foreshadowing of the mission to the Gentiles. The scene invites us to examine whether we have already limited whom we will approach with the gospel, allowing personal ties and cultural differences to set the boundaries. The church must move beyond its own comfort and seek ways to draw near to those who do not yet know the Lord. The sermon’s references to proclaiming the gospel across diverse cultures and through media also reflect this mission to come closer to people in the settings of their everyday lives.

The grace that redirected Saul’s steps on the road to Damascus also sheds light on our choices today. If we have put off an opportunity to speak about the gospel or passed by someone’s need, we can begin with a small act of obedience in that very place. With whom am I called to share the gospel today, and whom am I called to walk alongside and care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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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 목사 성경 묵상: 빌립보서 4장, 자족의 비결과 나눔의 은혜 (Olivet University)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석탄이 주인의 방에만 쌓여 있고, 서기는 꺼져가는 불씨 곁에서 추위를 견디는 장면이 나온다. 스크루지의 재산은 바로 옆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추위조차 덜어주지 못했다.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의 빌립보서 4장 설교는 이 장면 너머의 질문을 던진다. 얼마를 가졌는가보다, 가진 것이 우리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묵상은 설교가 짚은 자족의 비결과 나눔의 은혜를 따라가 본다.

감옥에 전해진 선물, 그리고 오래 품어 온 마음

바울은 감옥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빌립보 교회의 선물을 받았다. 그 돈과 물품에는 바울의 필요를 기억하고 헤아려 온 성도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0절에서 그 마음이 다시 싹튼 것을 기뻐한다. 오래 품었지만 표현할 기회가 없던 생각이 마침내 누군가의 손을 거쳐 그에게 닿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음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이 시작될 때부터 바울과 주고받는 교제에 참여했고,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거듭 그의 필요를 도왔다. 한 번의 감동에 머물지 않고, 멀리 있는 한 사람의 삶을 자기 일처럼 돌보는 관계로 자란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선물에 기대어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궁핍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선물을 귀하게 받으면서도 그것에 매이지 않았고, 스스로 자족한다는 이유로 성도들의 사랑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받은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소유에 매이지 않는 자유가 그의 감사 안에 함께 있었다.

이 장면은 교회가 물질을 대하는 태도도 돌아보게 한다. 헌금과 구제, 선교 후원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오간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의 교제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서로를 향한 배려와 공평한 나눔이 있을 때 재정은 사랑을 전하는 구체적인 언어가 된다.

자족의 비결은 내 힘이 아니라 은혜에 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설교는 이 고백을 스토아 철학이 중시한 내면의 평정과 견주면서, 만족의 근원이 다르다는 점을 짚는다. 바울의 자족은 자기 수련으로 감정을 다스려 얻은 초연함이 아니다. 그의 중심을 붙드는 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자족을 십자가와 부활로 주어진 은혜에 연결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유로 증명해야 한다면 물질이 변할 때마다 자기 가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정체성을 붙든 사람에게 재산의 크기는 삶의 최종 기준이 될 수 없다. 궁핍이 존재를 초라하게 만들지 못하고, 풍족함도 홀로 설 수 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바울이 자족을 ‘배웠다’고 말한 대목도 오래 읽을 만하다. 그의 고백 뒤에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배고픔과 추위를 겪은 선교의 시간이 있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의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여러 형편을 지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익힌 사람의 말이다. 자족의 비결은 어려움을 피해 간 자리가 아니라,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은혜에 머무는 자리에 있다.

이 문맥에서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고백을 읽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원하는 성공을 빠짐없이 얻는다는 약속이 아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모든 형편을 내 뜻대로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믿음이다.

빈손에도, 넉넉한 손에도 믿음이 필요하다

자족은 부족할 때만 배우는 덕목이 아니다. 설교는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한 이스라엘과, 풍족해질 때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신명기 8장의 경고를 함께 떠올린다. 궁핍은 마음을 분노와 비굴함으로 기울게 하고, 풍요는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얻었다는 교만을 키운다.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두 형편이 모두 하나님을 잊게 하는 시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에 매이지 않는 삶은 재산을 모두 버리는 행동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설교가 요청하는 것은 무소유의 외형이 아니라, 돈이 신앙과 인격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성찰이다. 돈이 늘었다고 사람을 내려다보거나 줄었다고 자신의 존엄까지 낮추고 있다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돌아볼 때다.

이 성찰은 공동체의 삶으로도 이어진다. 예배 장소가 좁고 재정이 어려운 때에는 주어진 자리에서 감사하며 평안을 배우고, 형편이 넉넉해진 때에는 그 부요함을 하나님의 선물로 기억한다. 부족할 때 배운 의지함을 풍족할 때 잊지 않을수록 재물은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인다.

나눔의 은혜는 하나님 앞에서 향기가 된다

바울의 시선은 이제 자신이 받은 선물에서 그것을 보낸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 간다. 빌립보서 4장 17절에서 그가 구하는 것은 선물 자체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유익한 열매가 풍성해지는 일이다. 장재형 목사는 나눔이 받는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주는 사람도 헌신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영적 열매를 맺고, 함께 은혜의 풍성함을 누린다.

이어지는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표현은 이 주고받음을 하나님 앞에 놓는다. 빌립보 교회의 선물과 에바브로디도의 수고는 사람에게 베푼 호의를 넘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로마서 15장 27절에서 영적인 것을 나눈 이들이 물질로 서로를 섬기는 모습도, 공동체가 하나라는 고백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헌금은 상대를 지배할 권리를 사는 값이 될 수 없다. 주는 이와 받는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형제자매이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우월해질 이유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비굴해질 이유도 없다. 자족은 사랑을 거절하는 독립이 아니며, 나눔은 상대를 지배하는 권리가 아니다.

설교가 떠올리는 사르밧 과부와 마게도냐 교회의 이야기는 이 헌신이 넉넉한 사람만의 몫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지막 가루와 기름만 남았던 과부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고, 극심한 가난을 겪던 교회들도 다른 공동체를 위한 나눔에 참여했다. 그들은 사랑의 시작을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뒤로 미루지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소망을 전한다. 이 약속을 주고받은 액수의 계산으로 줄여 버리면 서로를 세우는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치게 된다. 마지막에 남아야 할 것은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았는가를 적은 장부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함께 경험한 은혜다.

편지를 닫는 바울의 축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들의 심령에 있기를 빈다. 물질과 헌신의 이야기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위한 기도로 돌아온다. 이 묵상도 내 손에 남은 것만 헤아리던 시선을, 나를 붙드시는 주님과 곁에 있는 이웃에게로 옮기게 한다. 오늘 내게 주어진 것으로, 나는 누구의 필요를 기억하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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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大卫牧师圣经默想:跟随看不见之神圣护理的信心与同工 (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

在意大利罗马圣母人民圣殿深处,悬挂着卡拉瓦乔的一幅名画。画中,他将从漆黑黑暗中倾泻而下的强烈光芒凝固在画布之上。这幅名为《大马士革路上圣保罗的归信》的作品,以极端的明暗对比,描绘了从马上跌落、闭上双眼的扫罗,以及那些并不知道他内心正发生宇宙性巨变、只是平凡站立在周围的人物。在这幅画布之中,流淌着一种沉重的沉默:天上的巨大事件,如何彻底颠覆一个人的内在世界。张大卫牧师的讲道,正是从追踪隐藏在这沉默背后的巨大运动开始;那就是我们眼所不能见,却从未停止跳动的神的护理。当我们不再把圣经读作死去的文字,而是读作此时此刻在我们身旁呼吸的属灵临在时,我们才终于越过宗教的表层,进入恩典的深渊。

“我父做事直到如今,我也做事。”《约翰福音》中的这一宣告,并不是单纯劝勉人要勤勉,而是一只神学的指南针,向我们显明在人类日常之下流动的永恒生命轨迹。话语的流动使我们暂时停下在忙碌生活表面上的脚步,并引导我们把目光转向超越维度的背后世界。在我们计划、交谈,并交替品尝成就与失败的所有日常时间里,其实是神先行动,而我们的脚步被排列在那圣洁的波动之上。这一深刻洞见,使信仰从盲目的道德决断中被释放出来,并升华为甘心加入神作为之中的同工喜乐。事工并不是靠我的力量去帮助神,而是察觉那位已经在工作的神之手,并把自己的生命叠放进祂工作的流动之中。

光划破黑暗时,恩典背后的世界才终于开启

《使徒行传》第九章中扫罗的故事,最强烈地见证了这背后的世界如何冲破人紧闭的门而进入。扫罗是一个被自己的宗教信念囚禁,并将对教会的暴力与捆绑合理化的坚定之人。然而,他带着杀气走向大马士革的脚步,在如闪电般倾泻而下的天上之光面前彻底停止。主说:“扫罗,扫罗,你为什么逼迫我?”这一声音,在瞬间瓦解了他傲慢的理性,并震动了他存在的根基,成为致命而根本的呼召。这篇讲道所照亮的,正是这压倒性的恩典时刻。归信绝不是人靠自己刻苦修行,或通过理性同意而完成的事。人凭计算与常识根本无法理解,但神却主动寻找教会的仇敌,并以自己的光遮盖他;这单方面的救恩事件,正是福音。

扫罗失去光明,三天不吃不喝,陷入黑暗之中;这并不只是肉体上的冲击或痛苦时间。那是旧有的确信被彻底摧毁,并使一个新维度的世界在他里面孕育诞生之前,必须经历的圣洁阵痛。正如米开朗基罗在梵蒂冈保禄小堂墙面上以巨大规模描绘归信的叙事,扫罗的倒下,不只是个人伦理上的改善,而是扭转整个历史方向的启示显现,也是存在论上的转变。就在“我要主导自己人生轨道”的虚妄意志被折断的那一刻,人生真正的门才被打开。福音是悖论性的爱:它先彻底击碎我们,然后再以天上的生命重新扶起我们。

改变呼召轨道的护理与顺服的节奏

神的救恩戏剧,并不会只因一个人的戏剧性改变而完成;它还通过另一个在看不见之处、以沉默预备好的顺服,扩展进入历史。当扫罗在黑暗中进入真切祷告之时,主在舞台的另一边呼召一位名叫亚拿尼亚的无名门徒。亚拿尼亚并不是因伟大功绩而被记念的人物,但他却拥有一种深厚的亲密关系,能够在主呼召时立刻回应:“主啊,我在这里。”这段默想性的经文提醒我们,事工归根到底并不是证明宏大业绩的劳动,而是对主细微声音立即回应的属灵导航。神准确鉴察人的名字、他所停留的街道,以及他灵魂疲惫的状态,并在加尔文所说的护理与预定的奥秘中,完美连接两个人的轨道。

当然,信心之人并不是机械顺服的机器人。因此,亚拿尼亚面对曾经逼迫教会的扫罗时,也吐露出带着惧怕的抗辩。然而主并没有压制他,而是说:“这人是我所拣选的器皿”,以更深层次的计划说服他。主教导他,在蒙召者的荣耀背后,苦难的重担总是像硬币的另一面一样紧紧相连。当亚拿尼亚越过惧怕,为扫罗按手,并称他为“兄弟扫罗”时,世界陈旧的常识崩塌了,天上的平安渗入历史之中。如此,张大卫牧师的信息沉稳地照亮了我们每个人在日常中所承担的小小顺服,如何与神国巨大的运动相连接。同工并不是宏大的头衔,而只是把自己交托给主之流动的关系性行动;就在那时,我们才终于能发出真正有能力的告白:“是主在做。”

边界崩塌之地所临到的福音地平线

进入《使徒行传》第十章,圣灵拆毁人类僵固边界的工作更加清晰地展开。罗马百夫长哥尼流,是外邦人,也是手握帝国之剑的人;然而圣经却描写他是敬畏神、周济穷人、常常祷告的人。这有力证明,福音绝不能被囚禁在特定血统或律法的围墙之内。天使向哥尼流显现,并告诉他他的祷告已经达到天上;这一场景证明,我们具体的祷告,乃是能够触动宝座的真实事件。传道并不是用精巧逻辑使对方屈服的技术,而是这样一种颤栗的过程:尊重神早已培育在对方灵魂深处的渴望,并站在那人面前。那位站在教会之外陌生边界上、却敞开心灵的人,神通过护理的导航最先寻找他。

同一时间,彼得也在约帕的房顶上按时祷告,并经历天开了的异象。面对“宰了吃”俗物的吩咐,彼得试图像守护生命一样守住律法的边界;然而,在“神所洁净的,你不可当作俗物”这三次严肃宣告面前,他的抵抗被彻底击碎。正如多梅尼科·费蒂所描绘的黑暗中彼得虔敬的战栗,古老的宗教身份被拆解,并被移植到更宽广救恩地平线的这一瞬间,既痛苦至极,又是耀眼的祝福。彼得内在的崩塌刚刚结束,哥尼流所差来的人便在门外寻找他;这一戏剧性的时机,显明一个人的敬虔、一个人的顺服、一个人的差遣,如何与天上的指示彼此咬合,形成同工的完美节奏。

面向圣洁日常的告白:我们都在神面前

当彼得进入哥尼流家中时,这位手握帝国权力的百夫长,竟跪拜在加利利年老渔夫面前。然而彼得急忙扶他起来,说:“你起来,我也是人。”这是人间世俗等级彻底崩塌,并唯独高举神的圣洁秩序被建立起来的瞬间。哥尼流满怀感动地告白:“现在我们都在神面前,要听主所吩咐你的一切话。”张大卫牧师讲道的结论,正是奔向这一庄严而美丽的位置。我们的聚会、我们的相遇、我们小小的劳苦,绝不是为了在人面前证明成果而挣扎。它是在看不见的永恒面前,献上我们整个存在的圣洁敬拜,也是顺服的旅程。

信仰归根到底,就是即使在生活极其微小的缝隙中,也同时怀着“神正在察看”的敬畏与着迷而活。定时祷告并不是把时间调准的律法主义强迫,而是生命的呼吸:把我灵魂的天线从世界的噪音中收回来,重新调到天上的频率。从为礼拜堂挑选一朵花的心意,到分别初熟之物献上的指尖小小诚意,我们的敬畏都在其中被证明。在繁忙工作与错综关系之中,当我们有意识地停下来仰望天空时,分散破碎的日常,才终于被美丽地串联成一段有意义的圣约叙事。当我们确信,在无数偶然背后,有父正在工作的手时,我们的脚步便不再是孤独的彷徨,而成为圣洁的同行。今天,在你清楚面对的无数人和繁忙事务之中,你的内心究竟站在那里,等待谁的指示?当我们屈膝跪下,折断虚妄固执,在那安静而诚实的位置上,曾经关闭的天门,必将再次无声地开始开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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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ダビデ牧師 聖書黙想:見えない摂理に従う信仰と同労 (Olivet University)

イタリア・ローマのサンタ・マリア・デル・ポポロ聖堂の奥深くには、漆黒の闇の中に降り注ぐ強烈な光をカンヴァスに閉じ込めた、カラヴァッジョの名画が一つ掛けられています。「ダマスコ途上の聖パウロの回心」と題されたこの作品は、馬から落ちて目を閉じたサウロと、その内面で起こっている宇宙的な激変を知らないまま、ただ平凡に立っている周囲の人物たちを、極端な明暗によって対比させています。このカンヴァスの中には、天の巨大な出来事が一人の人間の内面をどのように覆すのかという、重い沈黙が流れています。張ダビデ牧師の説教は、まさにこの沈黙の背後に隠された大いなる動き、すなわち私たちの目には見えなくても絶えず脈打っている神の摂理をたどるところから始まります。聖書を単なる死んだ文字としてではなく、今この瞬間、私たちのそばで息づいている霊的な現存として読み取るとき、私たちは初めて宗教的な表面を越えて、恵みの深淵へと入っていくのです。

「わたしの父は今に至るまで働いておられる。わたしも働く。」ヨハネによる福音書のこの宣言は、単なる勤勉さへの勧めではなく、人間の日常の下を流れる永遠の命の軌跡を示す神学的な羅針盤です。御言葉の流れは、忙しく回り続ける生活の表面で私たちをしばし立ち止まらせ、次元を超えた背後の世界へと視線を向けさせます。私たちが計画し、語り合い、成功と失敗を交互に味わうすべての日常の時間の中で、実は神が先に動いておられ、その聖なる波動の上に私たちの歩みが整えられているのです。この深い洞察は、信仰を盲目的な道徳的決断から解き放ち、神の働きに喜んで加わる同労の喜びへと昇華させます。働きとは、私の力で神を助け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すでに働いておられるその御手に気づき、その流れの中に自分の人生を重ねていくことなのです。

光が闇を切り裂くとき、初めて開かれる恵みの背後

使徒行伝9章に登場するサウロの物語は、この背後の世界がどのように人間の閉ざされた扉を打ち破って入ってくるのかを、最も強烈に証言しています。サウロは、自らの宗教的信念に閉じ込められ、教会に対する暴力と拘束を正当化していた、揺るぎない人物でした。しかし、ダマスコへ向かう彼の殺気立った歩みは、稲妻のように降り注ぐ天の光の前で完全に止められます。主の「サウロ、サウロ、なぜわたしを迫害するのか」という声は、彼の傲慢な理性を一瞬で解体し、存在の底を揺り動かす決定的な召しでした。この説教が照らし出す場所は、まさにこの圧倒的な恵みの瞬間です。回心は決して、人間自身の身を削る修養や知的同意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人間の計算や常識では到底理解できなくても、教会の敵を先に訪ね、その光で覆ってしまわれる神の一方的な救いの出来事こそが、福音なのです。

光を失い、三日の間、食べることも飲むこともできなかったサウロの暗闇は、単なる肉体的衝撃や苦痛の時間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は、以前の古い確信が徹底的に崩れ、新しい次元の世界が彼の内側で胎動するために、必ず通らなければならない聖なる産みの苦しみでした。ミケランジェロがバチカンのパオリーナ礼拝堂の壁面に巨大な規模で描き出した回心の物語のように、サウロが倒れ伏した出来事は、個人の倫理的改善を超えて、歴史全体の方向を曲げてしまう啓示の現れであり、存在論的な転換です。私が自分の人生の軌道を主導しようとする虚しい意志が折られるまさにその瞬間、人生の真の扉が開かれます。福音は、私たちをまず徹底的に打ち砕いた後、天の命によって再び立ち上がらせる、逆説的な愛なのです。

召しの軌道を変える摂理と従順のリズム

神の救いのドラマは、一人の劇的な変化だけで完成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見えない場所で、沈黙のうちに備えられていたもう一つの従順を通して、歴史の中へと広がっていきます。サウロが暗闇の中で真剣な祈りへと進んでいたとき、主は舞台の反対側で、アナニアという名もない弟子を呼ばれます。アナニアは偉大な業績によって記憶される人物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主の召しに即座に「主よ、ここにおります」と応答できる、深い親密さの持ち主でした。この黙想的な本文は、働きとは結局、壮大な実績を証明する労働ではなく、主の細やかな御声に直ちに反応する霊的なナビゲーションであることを思い起こさせます。神は、人の名前とその人がとどまる通り、そしてその魂の疲れた状態までも正確に見守っておられ、カルヴァンが語った摂理と予定の神秘の中で、二人の軌道を完全に結び合わせられるのです。

もちろん、信仰の人は機械的に従うロボットではありません。そのため、アナニアもまた、教会の迫害者であったサウロに対して、恐れを含んだ抗弁を吐き出します。しかし主は彼を抑圧するのではなく、「この人は、わたしの選びの器である」と語り、より深い次元の計画へと彼を説得されます。召された者の栄光の背後には、いつも苦難の重荷が硬貨の両面のように結びついていることを教えておられるのです。アナニアが恐れを越えてサウロに按手し、「兄弟サウロよ」と呼ぶとき、この世の古い常識は崩れ、天のシャロームが歴史の中へと入り込んできます。このように張ダビデ牧師のメッセージは、私たち一人ひとりが日常の中で担う小さな従順が、どのように神の国の大きな運動と結びついているのかを、重く照らし出します。同労とは、立派な肩書きではありません。ただ主の流れに自らの身を委ねる関係的な行為であり、そのとき初めて私たちは、「主がなさる」という真の力の告白をほとばしらせるようになるのです。

境界が崩れた場所に訪れる福音の地平

使徒行伝10章へ進むと、人間の固くなった境界を打ち壊される聖霊の働きが、さらに鮮明に展開されます。ローマの百人隊長コルネリオは、異邦人であり、帝国の剣を帯びた者でした。しかし聖書は彼を、神を畏れ、施しを行い、常に祈る者として描いています。これは、福音が決して特定の血統や律法の囲いの中に閉じ込められ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力強い証しです。天使がコルネリオに現れ、彼の祈りが天に届いたことを告げる場面は、私たちの具体的な祈りが御座を動かす現実の出来事であることを証明しています。伝道とは、精巧な論理によって相手を屈服させる技術ではありません。このように、神があらかじめ耕しておかれた魂の渇きを尊重し、その前に立つ震えるような過程なのです。教会の外の見知らぬ境界に立っていながらも心を開いていたその人を、神は摂理のナビゲーションを通して、まず訪ねて行かれるのです。

同じ時、ペテロもまた、ヨッパの屋上で定時の祈りをささげているときに、天が開かれる恍惚の経験をします。汚れた動物を屠って食べなさいという指示を前に、律法の枠を命のように守ろうとしたペテロの抵抗は、「神が清めたものを、あなたが汚れてい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三度にわたる厳かな宣言の前で、粉々に砕かれます。ドメニコ・フェッティが描いた、闇の中にいるペテロの敬虔な震えのように、古い宗教的アイデンティティが解体され、より広い救いの地平へと移し植えられるこの瞬間は、激しく痛みを伴いながらも、まばゆい祝福です。ペテロの内的崩壊が終わると同時に、コルネリオが遣わした人々が門の外で彼を捜すという劇的なタイミングは、一人の敬虔、一人の従順、そして一人の派遣が、天の指示とかみ合う同労の完全なリズムを示しています。

聖なる日常へ向かう告白、私たちはみな神の前におります

ペテロがコルネリオの家に入ったとき、帝国の権力を持つ百人隊長は、ガリラヤの年老いた漁師の前にひざまずいて拝します。しかしペテロは急いで彼を起こし、「お立ちなさい。私も人間です」と答えます。人間の世俗的な序列が跡形もなく崩れ、ただ神だけを高くする聖なる秩序が立てられる瞬間です。コルネリオは感激に満たされて、「今、私たちは主があなたにお命じになったすべてのことを聞こうとして、みな神の前におります」と告白します。張ダビデ牧師の説教の結論は、まさにこの厳かで美しい場所へと向かっていきます。私たちの集まり、私たちの出会い、私たちの小さな労苦は、決して人の前で成果を証明するためのもがき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見えない永遠の前で、私たちの存在全体をささげる聖なる礼拝であり、従順の旅路なのです。

信仰とは結局、人生のごく小さな隙間においても、「神が見守っておられる」という畏れと魅了を同時に抱いて生きることです。定時の祈りは、単に時計に合わせる律法的な強迫ではありません。自分の魂のアンテナを世の騒音から引き戻し、天の周波数へと再び合わせる命の呼吸です。礼拝堂に飾る一輪の花を選ぶ心や、初物を聖別してささげようとする指先の小さな真心に至るまで、私たちの畏敬の念は証しされます。忙しい仕事と絡み合った人間関係の中でも、意図的に立ち止まり、天を仰ぎ見るとき、散らばり、壊れていた日常は、初めて一つの意味ある契約の物語として美しくつなぎ合わされます。数多くの偶然の背後で働かれる父の御手を私たちが確信するとき、私たちの歩みはもはや孤独なさまよいではなく、聖なる同行となります。今日、あなたがはっきりと向き合っている多くの人々と慌ただしい出来事の中で、あなたの内面は、いったい誰の指示を待って立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私たちがひざまずき、虚しい頑なさを折る、その静かで誠実な場所で、閉ざされていた天の扉は再び音もなく開き始めるでしょう。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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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ción bíblica del pastor David Jang: Fe y colaboración que siguen la providencia invisible (Olivet University)

En lo profundo de la iglesia de Santa Maria del Popolo, en Roma, Italia, se encuentra una célebre pintura de Caravaggio que encierra sobre el lienzo una luz intensa derramada en medio de una oscuridad profunda. Esta obra, titulada La conversión de san Pablo en el camino de Damasco, contrapone con un claroscuro extremo a Saulo, caído del caballo y con los ojos cerrados, con las figuras que permanecen de pie a su alrededor sin comprender la conmoción cósmica que está ocurriendo en su interior. Dentro de este lienzo fluye un pesado silencio sobre cómo un acontecimiento celestial trastorna por completo el interior de un ser humano.

El sermón del pastor David Jang comienza precisamente siguiendo el gran movimiento escondido detrás de ese silencio: la providencia de Dios, invisible a nuestros ojos, pero que late sin cesar. Cuando leemos la Biblia no como una letra muerta, sino como una presencia espiritual que respira junto a nosotros en este mismo instante, entonces empezamos a atravesar la superficie religiosa y a entrar en el abismo de la gracia.

“Mi Padre hasta ahora trabaja, y yo trabajo.” Esta declaración del Evangelio de Juan no es simplemente una exhortación a la diligencia, sino una brújula teológica que muestra la trayectoria de la vida eterna que corre por debajo de la cotidianidad humana. El fluir de la Palabra nos detiene por un momento en medio de la superficie acelerada de la vida y nos conduce a volver la mirada hacia el mundo invisible que existe detrás de ella, más allá de nuestra dimensión inmediata.

En todo el tiempo cotidiano en que planeamos, conversamos, alcanzamos logros y también experimentamos fracasos, en realidad Dios se mueve primero, y nuestros pasos se alinean sobre esa santa vibración. Esta profunda percepción eleva la fe más allá de una decisión moral ciega y la transforma en el gozo de colaborar voluntariamente con la obra de Dios. El ministerio no consiste en ayudar a Dios con nuestras propias fuerzas, sino en reconocer la mano de Aquel que ya está obrando y superponer nuestra vida al curso de esa obra.

Cuando la luz divide las tinieblas, se abre el trasfondo de la gracia

La historia de Saulo en Hechos 9 testifica de la manera más intensa cómo este mundo invisible irrumpe derribando las puertas cerradas del ser humano. Saulo era un hombre firme, encerrado en sus propias convicciones religiosas, que justificaba la violencia y las cadenas contra la iglesia. Sin embargo, sus pasos amenazantes hacia Damasco se detuvieron por completo ante la luz celestial que cayó sobre él como un relámpago.

La voz del Señor, “Saulo, Saulo, ¿por qué me persigues?”, desmanteló de inmediato su razón orgullosa y fue un llamado mortal que sacudió el fondo mismo de su existencia. El lugar que ilumina este sermón es precisamente ese instante de gracia abrumadora. La conversión jamás se produce por una disciplina ascética en la que el ser humano se quebranta a sí mismo, ni por un simple consentimiento intelectual. El evangelio es este acontecimiento unilateral de salvación, incomprensible para los cálculos y el sentido común humanos: Dios busca primero al enemigo de la iglesia y lo cubre con su luz.

La oscuridad de Saulo, que perdió la vista y durante tres días no comió ni bebió, no fue simplemente un tiempo de impacto físico o sufrimiento. Fue un santo dolor de parto que debía atravesar para que sus antiguas certezas se derrumbaran por completo y una nueva dimensión del mundo comenzara a nacer en su interior. Tal como la gran narración de la conversión que Miguel Ángel pintó en la pared de la Capilla Paulina del Vaticano, la caída de Saulo no fue una simple mejora ética personal, sino la manifestación de una revelación que cambió el rumbo de la historia y produjo una transformación ontológica.

En el preciso instante en que se quiebra la voluntad falsa de dirigir por uno mismo la trayectoria de la vida, se abre la verdadera puerta de la existencia. El evangelio es un amor paradójico que primero nos derriba por completo y luego nos levanta de nuevo con la vida del cielo.

La providencia que cambia la trayectoria del llamado y el ritmo de la obediencia

El drama de la salvación de Dios no se completa solamente con el cambio dramático de una persona. Se expande en la historia a través de otra obediencia preparada en silencio, en un lugar invisible. Mientras Saulo avanzaba en una oración seria dentro de la oscuridad, el Señor llamaba al otro lado del escenario a un discípulo sin fama llamado Ananías. Ananías no fue recordado como un hombre de grandes logros, pero poseía una profunda intimidad con el Señor que le permitía responder de inmediato: “Señor, aquí estoy”.

Este texto meditativo nos recuerda que el ministerio no es, en última instancia, un trabajo destinado a demostrar resultados grandiosos, sino una navegación espiritual que responde de inmediato a la voz delicada del Señor. Dios observa con precisión el nombre de una persona, la calle donde se encuentra y hasta el estado cansado de su alma; y, dentro del misterio de la providencia y la predestinación del que habló Calvino, conecta perfectamente las trayectorias de dos personas.

Por supuesto, la persona de fe no es un robot que obedece mecánicamente. Por eso Ananías también expresó un reclamo lleno de temor hacia Saulo, que había sido perseguidor de la iglesia. Pero el Señor no lo oprime; más bien lo persuade mostrándole un plan de una dimensión más profunda: “Este hombre es mi instrumento escogido”. Así le enseña que detrás de la gloria del llamado siempre está unido, como las dos caras de una moneda, el peso del sufrimiento.

Cuando Ananías supera el temor, impone las manos sobre Saulo y lo llama “hermano Saulo”, se derrumba el viejo sentido común del mundo y el shalom del cielo penetra en la historia. De esta manera, el mensaje del pastor David Jang ilumina con profundidad cómo la pequeña obediencia que cada uno asume en su vida cotidiana se conecta con el gran movimiento del Reino de Dios. La colaboración no es un título grandioso, sino un acto relacional por el cual entregamos nuestro cuerpo al fluir del Señor. Solo entonces brota de nosotros la verdadera confesión de poder: “El Señor lo hace”.

El horizonte del evangelio que llega cuando las fronteras se derrumban

Al pasar a Hechos 10, la obra del Espíritu Santo que derriba las fronteras endurecidas del ser humano se despliega con mayor claridad. Cornelio, centurión romano, era gentil y portador de la espada del imperio; sin embargo, la Biblia lo describe como un hombre que temía a Dios, daba limosnas y oraba constantemente. Esto constituye una poderosa evidencia de que el evangelio jamás puede quedar encerrado dentro de una determinada sangre, linaje o frontera legalista.

La escena en que un ángel se aparece a Cornelio y le anuncia que sus oraciones han subido al cielo demuestra que nuestras oraciones concretas son acontecimientos reales que llegan hasta el trono de Dios. La evangelización no es una técnica para someter al otro mediante una lógica refinada, sino un proceso de temblor reverente en el que nos presentamos ante el anhelo del alma que Dios ya ha preparado de antemano. Aunque aquel hombre estaba en una frontera extraña, fuera de la iglesia, su corazón permanecía abierto; y Dios fue el primero en buscarlo mediante la navegación de su providencia.

Al mismo tiempo, Pedro también experimentaba en la azotea de Jope, mientras oraba a la hora acostumbrada, un éxtasis en el que los cielos se abrían. Ante la orden de matar y comer animales considerados impuros, la resistencia de Pedro, que protegía el marco de la Ley como si fuera la vida misma, se hizo añicos ante la solemne declaración repetida tres veces: “Lo que Dios limpió, no lo llames tú común”. Como el temblor piadoso de Pedro en medio de la oscuridad, pintado por Domenico Fetti, este momento en que una antigua identidad religiosa se descompone y es trasplantada a un horizonte más amplio de salvación es profundamente doloroso y, al mismo tiempo, deslumbrantemente bendito.

Justo cuando termina el colapso interior de Pedro, los hombres enviados por Cornelio llegan a la puerta buscándolo. Ese momento dramático revela el ritmo perfecto de la colaboración, en el que la piedad de una persona, la obediencia de otra y el envío de una tercera se entrelazan con la instrucción del cielo.

Una confesión hacia la vida cotidiana santa: todos estamos delante de Dios

Cuando Pedro entró en la casa de Cornelio, el centurión que poseía autoridad imperial se arrodilló e hizo reverencia ante el anciano pescador de Galilea. Pero Pedro lo levantó de inmediato y respondió: “Levántate, pues yo mismo también soy hombre”. Ese fue el instante en que las jerarquías seculares humanas se derrumbaron sin reservas y se estableció un orden santo en el que solo Dios es exaltado.

Conmovido profundamente, Cornelio confesó: “Ahora, pues, todos nosotros estamos aquí en la presencia de Dios, para oír todo lo que Dios te ha mandado”. La conclusión del sermón del pastor David Jang se dirige precisamente hacia este lugar solemne y hermoso. Nuestras reuniones, nuestros encuentros y nuestros pequeños esfuerzos no son luchas destinadas a demostrar resultados delante de las personas. Son un culto santo en el que ofrecemos toda nuestra existencia ante la eternidad invisible, y son también un camino de obediencia.

Al final, la fe consiste en vivir incluso en las rendijas más pequeñas de la vida con temor y fascinación, sabiendo que “Dios está mirando”. La oración a horas fijas no es una obsesión legalista por ajustar el reloj, sino el aliento vital que retira la antena de nuestra alma del ruido del mundo y la vuelve a sintonizar con la frecuencia del cielo. Nuestro temor reverente se demuestra desde el pequeño cuidado de escoger una flor para colocar en el santuario, hasta la delicada sinceridad de unas manos que desean apartar y ofrecer lo primero.

Cuando, en medio de trabajos ocupados y relaciones enredadas, nos detenemos intencionalmente y levantamos la mirada al cielo, la vida cotidiana dispersa y rota se ensarta de nuevo con belleza en una narración significativa de pacto. Cuando estamos convencidos de la mano del Padre que obra detrás de innumerables casualidades, nuestros pasos dejan de ser un vagabundeo solitario y se convierten en un santo caminar junto a Dios.

Hoy, entre las muchas personas que tienes delante y las múltiples tareas que ocupan tu vida, ¿tu interior está esperando realmente la instrucción de quién? En ese lugar silencioso y honesto donde doblamos las rodillas y quebramos nuestra vana obstinación, la puerta del cielo que estaba cerrada comenzará a abrirse otra vez, sin hacer ru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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