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영적 가치에 대한 갈망과 선택의 무게(창세기25장)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의 창세기 25장 강해는 에서와 야곱의 서사를 단순한 형제간의 다툼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 본문을 통해 인간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 가치 평가가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지를 조명합니다. 이 기록은 우리 내면을 비추는 영적인 거울과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장자권이 단순히 먼저 태어난 이의 기득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하고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할 거룩한 유산임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언약의 통로이자 거룩한 책임의 무게

성경의 맥락에서 장자권은 가문을 대표하는 이름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보존되고 확장되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해진 운명대로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현실의 살결을 입습니다. 주어진 복이 실제적인 삶의 은혜로 전환되는 지점에는 언제나 인간의 태도가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누구를 택하셨는가라는 신학적 주제와 더불어, 그 선택의 무게를 나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눈에 보이는 질서 너머의 신비로운 섭리

본문은 에서와 야곱의 기질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시작합니다. 에서는 들의 사람으로서 용맹한 사냥꾼이었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는 조용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의 생존 환경에서 에서는 가문의 안전과 먹거리를 책임질 적임자로 보였으며, 아버지 이삭의 편애 또한 그를 향해 있었습니다. 외형과 기능, 감정의 흐름까지 모든 상황은 에서에게 유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외적인 질서 너머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적 표지가 현실 속에서 인간의 선택과 어떻게 얽히며 드러나는가 하는 점입니다.

찰나의 배고픔이 폭로한 내면의 지향성

두 형제의 운명이 엇갈리는 농축된 장면은 렌틸 죽 한 그릇의 거래에서 나타납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지쳐 있던 에서는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일을 가장 긴급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에서의 선택이 단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내면의 방향성이 노출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위기와 결핍의 순간에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언약은 계산기가 아니라 경외함과 책임의 언어로 다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영적 유산을 당장의 효용성이라는 잣대로 재단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빚으시는 책임의 훈련장

반면 야곱은 도덕적으로 결코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의 약점을 이용했고 속임수를 써서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설교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야곱의 결함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결핍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책임의 훈련장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두려움이 많고 부족한 사람이었으나, 단 한 가지 사실에는 집요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을 결코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두 사람을 가르는 영적 분기점이 됩니다.

이 장면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얀 빅토르스의 유화 작품은 ‘지금 여기’의 욕구와 ‘그 너머’의 유산이 한 테이블 위에 놓인 찰나를 포착합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의 장면에서 형체를 얻습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거래의 순간들 앞에 서며, 그 반복된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됩니다.

복을 소유하는 단계에서 복을 감당하는 단계로

야곱은 축복을 얻은 직후 안락한 성공을 누리는 대신, 형의 분노를 피해 도망자가 되어 고달픈 세월을 보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겪은 수많은 연단의 과정은 그를 ‘복을 얻으려는 사람’에서 ‘복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재구성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결단은 단순히 목표를 움켜쥐는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목표가 내 삶을 흔들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인격이 그 가치에 맞춰지도록 허용하는 지속적인 용기입니다.

에서는 상실 이후 통곡하며 후회했지만, 성경은 그를 망령된 자로 경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가볍게 여긴 가치가 결국 우리 내면에서 효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영적 감각은 매일의 습관과 우선순위를 통해 서서히 형성됩니다.

현대적 ‘붉은 것’과 영혼의 나침반

오늘날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을 부추기는 수많은 ‘붉은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즉각적인 소비와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장재형 목사는 “너는 무엇을 가장 먼저 찾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배고픔이나 피곤함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것이 영혼의 나침반이 되어 언약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들 때 위기는 시작됩니다. 가족이나 성공,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본질을 팔아버리는 행위는 결국 더 깊은 영적 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책임으로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넓어집니다. 신앙의 승계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신념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에 선택은 곧 투자이며, 그 투자는 우리가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고백이 됩니다.

영원한 약속을 붙드는 매일의 결단

복음은 야곱의 교활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과 계산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장자의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에게 열려 있는 고귀한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것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진짜 위태로울 때는 눈앞에 빵이 없을 때가 아니라, 그 빵 때문에 약속을 팔아버릴 때입니다. 현실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이 최종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약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우선순위를 세워줍니다.

결국 창세기 25장의 서사는 우리를 경계와 소망으로 인도합니다. 소중한 것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와 동시에, 부족한 자일지라도 진짜 가치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어떤 출발선에 서 있든, 오늘 더 귀한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역사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당장의 편의보다는 영원한 약속을 선택하는 언약의 사람으로 서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진정한 믿음의 태도입니다.

prismpress.kr

davidj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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