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남긴 ‘이젠하임 제단화’ 앞에 서면, 우리는 인간의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극단을 마주하게 됩니다. 찢기고 비틀린 채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몸은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너머, 인간의 죄와 죽음이 지닌 그 참혹한 무게를 고스란히 증언합니다. 그러나 그 처절한 고난의 현장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찬란한 ‘새로움’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고통 속으로 내려오셔서 단절된 관계를 잇기 위해 치르신 그 무게가 우리를 비로소 ‘새 사람’으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낡은 자아의 왕좌에서 내려와 십자가의 곁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통해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히 낡은 습관을 수선하거나 종교적인 열심을 덧칠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닙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선언을 인간 존재의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동하는 ‘존재론적 전환’이라고 설명합니다. 내 욕망이 삶의 법이 되던 옛 질서를 끝내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끄는 새로운 질서로 옮겨가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전환은 하나님과의 화해로부터 시작됩니다. 죄가 만든 단절은 인간 내부의 균열을 넘어 이웃을 향한 태도와 공동체의 신뢰까지 무너뜨립니다. 십자가는 이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치르신 대가의 상징이며, 우리는 그 은혜의 십자가 아래서 비로소 자아의 왕좌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장재형목사의 신학적 통찰에 따르면, 중생은 단지 종교적 선언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뒤집어 삶의 실질을 재배치하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죽음의 침묵을 깨고 일어서는 부활의 생명력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걸작 ‘부활’ 속 그리스도는 고요하면서도 압도적인 권위로 무덤을 뚫고 일어섭니다. 잠든 병사들의 무력함과 대비되는 그 강렬한 시선은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우리 삶의 최종 권세가 아님을 웅변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과거의 기이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절망을 절대화하는 습관을 깨뜨리는 강력한 동력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삶은 곧 부활의 논리를 따르는 삶입니다. 끝이라고 여겨졌던 실패와 상처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시작에 몸을 싣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부활을 미래의 약속으로만 미루지 말고, 오늘의 삶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다성(多聲)의 합창이 되어 흐르는 성령의 은사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분은 바로 성령입니다. 엘 그레코의 ‘성령 강림’에서 포착된 불의 혀는 각기 다른 표정과 배경을 가진 제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영적 운동으로 묶어냅니다. 성령충만은 개인이 고립된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은사와 성향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조화를 이루는 ‘다성의 합창’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12장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의 영적 장식품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살리고 이웃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예언, 섬김, 가르침, 구제 등 모든 은사는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잃는 순간 왜곡되고 맙니다. 은사의 다양성은 경쟁의 이유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워 공동선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정교한 설계이며, 이를 발견하는 것은 곧 우리 삶에 맡겨진 사명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실체로 빚어가는 화해의 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식탁의 중앙에 앉은 그리스도는 요동치는 제자들의 감정 사이에서 공동체의 중심축을 세웁니다. 교회 역시 이와 같습니다. 사람의 명성이나 권리가 중심이 되면 분열이 생기지만,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서로 다른 배경이 오히려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사랑을 감정의 온도가 아닌 삶의 방향으로 정의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결단이야말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실체라고 말합니다.
환대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받아 주신 사건을 일상에서 재현하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렘브란트가 묘사한 탕자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체온처럼, 교회가 그 품을 잃지 않을 때 복음은 향기를 발합니다. 예배에서 얻은 은혜가 삶의 현장에서 봉사의 삶으로 번역되고, 미움 대신 선을 택하는 성령충만한 선택들이 쌓일 때 우리는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의 과거는 더 이상 우리를 규정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과거의 죄책을 심판했고, 부활이 미래의 소망을 열었으며, 성령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를 재창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화해의 복음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내 곁의 이웃과 어떻게 화해하며, 내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랑으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삶의 갈피마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